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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35일만에 한편" 빨리 찍기 명수|『도시…』시위로 상영 첫 중단 기록|『야행』검열서 52군데 잘려 수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김수용 감독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65년)는 25년 전에 관객 29만명이 들었고, 이광수 원작의 『유정』(66년)은 33만명이 들었다. 그의 영화는 반드시 20만, 30만명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관객이 잘 드는 편이 있다. 그런데다 한번 촬영을 시작하면 스케줄대로 어김없이 제날짜에 물건을 만들어놓고는 했다. 그러니 제작자들이 그때그때 시세의 최고 개런티를 내며 그에게 작품의뢰를 안할 리가 없었다.
그의 연보를 보면 1958년 데뷔한 이후, 59년 4편, 60년 3편, 61년 3편, 62년 3편으로 시작하자마자 착실한 작품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63년 7편, 64년 6편, 65년 8편, 66엔 5편으로 점차 바쁘게 팔리기 시작하더니 67년엔 한햇동안 무려 10편을 연출한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로 약 35일만에 한편씩을 뚝딱 만들어낸 셈이 되는 것이다.
외국에도 빨리 찍기의 명인으로 이름난 감독들이 있지만 김수용 감독은 그 방면에서도 한국에선 기록보유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에게는 또 하나 다른 기록이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수난사다.
『도시로 간 처녀』(81년)가 중앙극장에 걸렸을 때 버스안내양 3백명이 극장 앞에서 시외를 벌이다 극장간판까지 끌어내리는 과격한 행동을 했다.
실상인즉 이 동원된 버스안내양들은 그 당시의 관제노조가 버스안내양들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환경이 사회에 공개될 것이 두려워 꾸며 낸 시위였다. 『도시로 간 처녀』는 작가 김승옥씨가 시내버스종점과 안내양들의 합숙소를 탐방, 심층 취재한 소재를 가지고 쓴 뛰어나게 훌륭한 시나리오였다.
김수용 감독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지방에서 상경한 근로청소년들의 비인간적 처우를 고발하는 형식으로 사회적·인간적 양심의 마비를 통렬하게 개탄했다. 이렇게 쓰면 그 영화가 딱딱한 사회고발영화처럼 생각될 지 모르겠으나 사실 영화자체는 아기자기하게 재미나는, 자못 낭만적인 분위기마저 감도는 걸작이 있다.
유지인·금보라·이영옥·한지인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오락성·사회성이 잘 조화된 걸작으로 김수용 감독의 대표작일 뿐더러 한국영화사적으로도 대표작에 속한다. 결국 이 영화는 개봉5일만에 상영이 중단되는 불상사를 빚고 말았다. 소재의 대상이 된 계층이나 단체의 시위·압력에 의해 상영 중단된 것은 한국영화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영화는 상영중단사건 3개월 후 모 극장주가 사 33일간 재개봉 상영했다. 이 사건 이후 비구니들이 그들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려는 것을 사전에 반대 항의해 제작 중단시킨 일도 있어서, 한국영화의 암담한 앞날을 우려케 하기도 했다.
김수용 감독의 작품 수난사는 이보다 앞서 시작된다. 역시 김승옥 원작의 『야행』(77년)은 제작사인 태창흥업이 제작도중 부도를 내 3년간 창고에서 자고 다시 검열에서 52군데나 잘렸다. 그런데도 이것이 개봉되었을 때는 115만명이 들어 창고에서 잠자기 전인 3년 전에 개봉되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이 들었을까하는 관계자들의 아쉬움을 남겼다.
『야행』에서 노처녀 은행원인 윤정희는 월남전에서 전사한 여고시절 선생의 추억을 간직한 채 동료은행원인 신성일과의 2중 생활을 벌이면서도 밤거리를 헤매며 남자 헌팅을 한다는 이색적인, 당시로는 놀랄만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화면이 무적 세련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병주 원작 『망명의 늪』(78년)은 영화에 나타난 강한 사회비판이 당국의 비위를 거슬러 외화수입 쿼타 1개를 받는 대신 역시 창고로 들어가야 했다. 필자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었지만 영화는 보지 못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 검열당국의 소아병적 자세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중광의 허튼 소리』가 12군데 잘리면서 김수용 감독의 감독 포기선언이 나오는 사건이 있었다. 중광이라면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 길』에서 주연으로 출연까지 한 약간 파계적 분위기의 승려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고아의 장기를 기증하는 얘기를 그린 『아메리카 드림』이 제작 전 미국 측의 완강한 거부반응을 받은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얘기다. 단정한 작품으로 순탄한 길을 걸어온 감독의 작품이 번번이 수난 당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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