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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후 극단선택 늘 것…2030·여성 특히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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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지금은 휴화산과 같은 상태입니다. 결국 약자부터 쓰러질 겁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극단선택 안전망을 서둘러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회복 과정에서 극단선택이 크게 늘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자살 예방 전문가 7인에게 포스트 코로나 전망과 대책을 물었다. “전문가 경고를 간과한 뒤 맞닥뜨린 현 코로나19 상황처럼 자살 문제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신임 대통령이 자살 문제를 직접 챙겨라”는 주문이 나왔다.

“회복 시기 극단선택 늘 것”

통계청에 따르면 올 10월까지 자살 사망자는 1만714명으로, 전년 동기간(1만1221명) 대비 4.5% 줄었다. 그러나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은 “코로나 위기가 잠잠해진 뒤 경제·사회적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극단선택이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 위기 직후 자살률이 증가한 과거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자살률은 급상승해 2011년(인구 10만명당 31.7명) 정점을 찍었다. K자형 회복 격차가 특히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난 중에는 다 같이 힘든 때라 생각해 이렇게 조용히 간다”며 “회복 시기 K자 궤도의 아래쪽에 속하는 그룹에서 자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7인 자살예방 전문가 주요 발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7인 자살예방 전문가 주요 발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0대 女 자살 우려, 돌봄 노동 보상해야”

코로나19로 양육부담이 증가하고 비정규직, 실업 문제 탓에 20·30대 젊은 층과 여성, 청소년 등이 주요 자살 위험군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응급실로 실려 온 자살시도자 가운데 20·30대 비율은 43%로 전년(37.8%)보다 늘었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사이버 상담 코너가 있는데 주로 10대, 20대가 ‘그냥 죽고 싶다’고 한다”며 “청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1393(자살예방상담전화)로 초등학생들이 많이 전화하는데 이전에 없던 일”이라며 “가장 왕성한 꿈을 갖고 생산해야 할 10, 20, 30대 연령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청년층의 경제적 안전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또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국가 지원이 전혀 없는데 30대 여성 자살률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인력, 재화로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청년 대상으로는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담 서비스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원격 진료에 대한 욕구가 높은 점을 고려해 전화를 통한 전문가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젊은층 자살시도자는 가정 문제 등 환경적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국가가 별도 시설에서 3일 정도 응급입원치료를 지원해줘야 한다”라고도 했다.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자살 예방 예산은 450억 정도로 올해(367억원)보다 22% 증액됐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8000억원) 등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손발도 부족하다. 안실련이 전국 229개 지자체를 평가했다니 지자체장 아래 조직을 갖춘 시·군·구는 57곳(24.9%)뿐이다. 자살예방센터를 따로 둔 곳은 41곳(17.9%)에 그치고 대다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내 팀 단위에서 대응한다. 황태연 이사장은 “복지부에서는 (자살예방센터) 200개를 신설하겠다고 했는데 예산이 부족해 가능할지 모른다”며 “기초 지자체 단위의 자살 예방 정책을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할 예산을 다 자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300개씩 서비스를 갖고 있는데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코로나 환자를 찾고 치료하려 노력하듯 절반의 절반만이라도 자살 위험군에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도 “지역마다 관련 센터 직원이 부족해 한두 명이 수백, 수천 명의 고위험군을 관리하는 실정”이라며 “국가 지도자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자살위원회 면피성 회의”…“대통령이 사명 인식해야”

하상훈 원장은 “2011년 자살률이 정점에 이르렀다가 내려왔지만 올라가는 속도에 비해 내려오는 속도가 너무 늦다”며 “다음 정부에서 생명에 대해 책임을 갖고 전향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민간의 역량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며 올해 자살 예방 정책을 가장 잘한 지자체로 꼽힌 성북구를 예로 들었다. 그는 “보건소에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고 자살예방센터를 별도로 둬 민간에 맡겼다”며 “동마다 마음 돌보미를 선정해 교육한 뒤 고위험군을 매일 방문해 보살피게 했더니 극단선택이 한 명도 안 나왔다”라고 했다. 고위험군을 1차로 발굴은 민간이 집중하고, 정부는 예산과 전문성이 필요한 사후 관리에 힘 쏟으라는 얘기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6월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4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6월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4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국무총리실 산하의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면피성 회의란 지적도 나왔다. 황태연 이사장은 “올해 회의를 6월에 한 번 했다. 11월에 한다고 해서 준비했는데 안 했다. 하반기에 최소한 한 번 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했더니 ‘법에 몇 번 하라고 안 나와 있는데 한 번만 하면 되지 않느냐’더라”고 꼬집었다.

양두석 센터장은 “일본은 총리실에 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2006년부터 10년간 온 부처가 힘을 합쳐 대책을 추진해 자살률을 37.3% 줄였다”며 “자살을 줄여야 한다는 국가적인 사명을 신임 대통령이 인식하고 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상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 연구에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강섭 이사장은 “일본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연구기관을 따로 갖고 있고 박사급 수십 명이 맞춤형 예방을 위해 자살 연구를 하고 있다”며 “왜 자살이 많은지, 어떤 지역의 어느 인구 집단이 자살하는지 추측하는 게 아니라 연구를 통해 근거를 찾아야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우 교수는 현 상황을 “휴화산 같다”면서 “K방역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유가 병상과 인력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전문가 경고를 무시해서인데, 자살에서도 실기해선 안 된다”라고 했다.

※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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