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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교육이 부실한 벤처인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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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에서 대표적인 벤처기업가였던 사람들이 회계장부 조작 등으로 철창 신세를 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기업가 정신을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KAIST에서 벤처기업에 뜻이 있는 이공계 학생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업가정신연구센터를 세우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재미교포 이종문(78.사진) 암벡스그룹 회장은 9일 대전 KAIST에서 있은 '이종문 도서관'과 '기업가정신연구센터' 개관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이들 시설은 이 회장이 200만 달러를 기부하고, 정부가 400만 달러를 보태 세워졌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 박물관에 1600만 달러(약 160억 원)를 내놓는 등 벤처기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대학.병원.사회봉사기관 등에 기부해 미국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한국의 부실한 교육과 부실한 정보가 부실한 벤처기업가를 만들어 낸다고 진단한다. 몇해 전 KAIST를 방문했을 때 한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총장에게 "기록 달성을 위해 10억 달러(약 1조 원)의 벤처 자금을 모으려는 계획이 있다"고 보고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학생이 총장실을 나간 뒤 이 회장은 총장에게 "저 학생은 깡통을 찰 거니 상대를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사업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비현실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벤처기업가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기업가정신연구센터에서는 이같은 학생들이 나오지 않도록 '벤처창업 지원 프로그램''경제 사회적 안목' 등을 기르는 교육을 하게 된다. 이종문도서관에는 4900종의 서적과 최신 기업 정보 등이 담긴 잡지들이 비치됐다.

"한국에서 자선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내 가족' '내 친구' '내 것' 등 '내 주변'으로 모든 것이 모아질 뿐 나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회장과 KAIST 간에도 특별한 인연은 없다고 했다. 젊고, 열정이 넘치는 KAIST가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금을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팔순이 내일 모레인데도 바쁘게 산다. 그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20년 전부터 소금과 버터.설탕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그는 "고령이지만 그 흔한 고혈압이나 당뇨 등 성인병이 하나도 없다"고 자랑했다. 요즘에는 미국 자택에 단풍나무 정원을 만들기 위해 수종을 수집하느라 바쁘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이 회장은 ㈜종근당 창업주인 고 이종근 회장의 친동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종근당 전무를 지내다 1970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82년 실리콘밸리에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시스템(DMS)사를 설립했으며 그 회사를 상장해 약 4억7000만 달러의 돈을 벌기도 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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