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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홍보 제한 없는데, 확성기·유인물은 안 된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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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06면

현실과 거리 먼 공직선거법 

여야 대선후보들이 연일 현장 중심의 대선 행보를 펼치는 가운데 선거운동 방식과 범위를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규제 자체는 필요하지만 선거 과열 등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성이 낮은 활동까지 과도하게 막고 있는 조항들은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들의 제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자유롭고 투명한 민주주의 선거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1994년 제정된 공직선거법은 이후 ‘돈 선거’를 방지하고 유권자의 불편을 덜어줬다는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규제 일변도의 법이 사반세기 이상 지속되면서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당초 의도와 달리 ‘규제를 위한 규제’가 돼버렸다는 비판도 적잖게 제기됐다. 후보와 정당의 선거 방식 등을 일일이 제한한 항목만 200개가 넘을 정도다. 반면 최근 급증하는 온라인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는 등 법과 현실과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선거를 관장하는 중앙선관위도 이처럼 현실과 맞지 않은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동안 25차례나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여야 정치권의 무관심과 눈치 보기 탓이 컸다. 특히 ‘시설물 및 인쇄물을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조항(90조)’의 경우 선관위가 2013년과 2016년에 이어 지난 4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내놨지만 여전히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개정안에는 선거 홍보 유인물을 현장에서도 직접 배부할 수 있게 허용하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시대 변화에 맞는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선관위 관계자는 “수년간의 논의 끝에 후보의 말과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상시 허용하는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와중에 확성기 금지라는 규제 조항이 새롭게 추가됐다”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불필요한 선거운동 규제는 유권자와 예비후보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국회만 이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국회 관계자도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법이 원포인트로 바뀌다 보니 그새 누더기법이 돼버렸다”며 “이젠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해 일부 개정 차원이 아니라 명확하게 안 되는 것만 규제하는 등 아예 새로운 법을 만든다는 각오로 여야가 초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선관위는 지난 5월에는 예비후보자의 홍보물 배포를 엄격히 규제해 놓은 선거법 제60조의 2 개정 의견도 국회에 제출했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높이자는 취지였다. 후보자의 홍보물을 제한된 수량 내에서 우편물로만 발송 가능하도록 규정해 놓은 기존 조항을 바꿔 홍보물 수량 제한을 폐지하고 예비후보자도 홍보물을 직접 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논의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한 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실제 현장에서도 현행법의 과도한 규제를 지적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구시 동성로에서 즉석연설을 할 때도 시민들 사이에서는 “후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왜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지난 8일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 대학로를 방문하자 청중들이 후보 발언을 듣기 위해 일제히 몰려들기도 했다. 신일균(29)씨는 “후보가 마이크도 없이 마스크를 쓰고 얘기하니 거의 들을 수가 없더라”며 “이렇게 모여들면 코로나 방역 지침만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후보들이 유세 현장에서 ‘생목소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확성기와 마이크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59조 4항에 따르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닐 경우 후보자는 마이크 등 확성 장치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 돼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지난 8월 이 사실을 모른 채 대구시 서문시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지지 호소 연설을 했다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현수막 설치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9일엔 이 후보의 전남 영광 방문을 앞두고 한 지역주민이 안내 현수막을 내걸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주민 김회중(72)씨는 “고령층이 많은 동네다 보니 현수막이나 지역 소식지를 통해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현수막 하나 없다 보니 후보가 온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는 주민이 적잖았다”며 “법도 무조건 막기만 할 게 아니라 실제 현장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겠다 싶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들이 지역 민생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당 관계자들은 초긴장 모드에 돌입한다. 선거운동 하나하나마다 선거법 위반 여부를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후보가 지난 4일 부산을 찾았을 때 이준석 대표가 ‘사진 찍고 싶으면 말씀 주세요’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지만 윤 후보는 바로 입지 못했다”며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급히 선관위 유권해석을 받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착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이 후보가 지역 투어에 나설 때마다 선관위 직원들도 매번 현장에 나와 선거법 위반 여부를 체크하고 있는 중”이라며 “법이 워낙 엄격하고 복잡하다 보니 사전 회의 때도 선거법에 정통한 실무진이 꼭 참석해 논란이 될 만한 일정이나 발언을 걸러내는 등 캠프 전체가 선거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학계 “표현의 자유 훼손해선 안 돼”

현행 선거법이 오프라인 선거운동과 온라인 선거운동에 대해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특히 최근 코로나 비대면 시대를 맞아 온라인 선거운동 비중이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카톡이나 유튜브 등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SNS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실정이다. 공약 홍보물도 오프라인에서는 배포 가능한 수량까지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데 비해 SNS를 활용한 홍보물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최근 온라인 선거운동 방식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면서 현행 선거법과 충돌하거나 기존의 규제로는 다룰 수 없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대 변화의 큰 흐름은 받아들이되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더 큰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학계에서는 온라인 선거운동의 경우 규제도 필요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SNS에서 종종 문제가 되는 가짜뉴스나 허위 비방, 집단적 댓글 조작 등은 기존의 민·형법을 통해서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며 “일부 일탈 행위를 잡기 위해 온라인 선거운동을 무작정 규제하기보다는 정치 참여나 선거문화 발전 등 더 중요한 헌법적 가치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지 정치권과 학계·시민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미, 선거운동 제한 않고 자금은 규제…프랑스는 집회도 보장

지난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집회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집회를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선거운동 방식이 엄격한 우리나라와 달리 세계 주요 국가들은 선거운동을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1년 제정된 연방선거운동법을 통해 대선 등 연방 단위 선거운동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운동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후보자는 지지를 호소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방송·신문 광고를 횟수와 내용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공식 선거기간의 경우 대선은 23일, 총선과 지방선거는 14일로 한정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마저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반면 선거 자금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기부 방식부터 관리 방법, 선거 경비 한도 등 선거에 쓰이는 비용을 투명하게 밝히도록 철저히 규제한다. 기업 자금이 기부금 형태로 선거 과정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프랑스는 집회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적극 보장하고 있다. 집회를 후보자의 ‘동원 선거’로 해석하기보다는 공공 집회의 일환으로 보고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후보자는 사전 신고 없이도 얼마든지 거리에서 집회 형태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다만 선거 홍보물에 대해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상세히 규제하고 있다. 선거 벽보는 지정된 장소 외엔 게시할 수 없고 크기나 부착 순서도 선거운동 감독 국가위원회(CNC)가 제시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벽보에 담긴 문구는 전국적으로 동일해야 하며 프랑스 국기색인 청색·백색·적색은 사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 선거법이 개별적 규제 형식을 갖추게 된 데는 일본의 영향도 크다. 1950년 마련된 일본의 공직선거법은 정치 부패 방지라는 취지에 따라 선거운동 방식을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다. 유세 차원의 호별 방문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연설도 오후 8시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자동차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법에 규정된 차량만 가능하고 선거 비용도 정치자금규정법을 통해 별도로 관리 감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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