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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핵 고집으로 주민에 고통 안긴 김정은 집권 10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7호 34면

성장 정지, 무역은 김일성 시절로 후퇴

핵·경제 병진 노선은 실패작으로 판명

현실 직시하고 새로운 대북 전략 짜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권좌에 오른 지 어제로 만 10년이 됐다. 유례없는 3대 세습의 결과 만 27세의 젊은 지도자가 2500만 인구를 통치하는 권력을 물려받았다. 집권 초기에는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 등으로 온전히 권력을 장악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는 빠른 시간 안에 권력 기반을 굳혔다. 10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 주의’란 용어가 사용되고 조부 김일성에게 붙이던 ‘수령’ 호칭까지 다시 등장할 정도가 됐다. 후견인이던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원로들을 가차 없이 숙청하는 등의 공포 정치에 힘입은 것이었다.

예상이 빗나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서방 국가에서 학교 교육을 받은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과는 달리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희망적 관측이 있었고 집권 초기 부분적인 개혁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스스로 국경을 걸어 잠근 완벽한 ‘자폐(自閉) 국가’다.

그렇게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오로지 한길로 매진한 것은 핵 개발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4차례 핵실험과 60여차례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결과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간 것은 처참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핵개발에 집중함으로써 나라 경제를 파탄 일보직전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자초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북한 경제 통계가 김정은 10년의 경제 실상을 대변한다. 김정일 집권기에 3.86%였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김정은 시대에 0.84%로 떨어졌다. 10년 동안 성장이 멈춰 선 것이다. 집권 초 63억 달러였던 교역액은 지난해 8.6억 달러로 쭈그러들었다. 김일성 시대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제재와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폐쇄 경제를 고집한 탓이다. 그러니 지난 10년간 주민 생활 수준이 얼마나 피폐해졌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이 주창했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핵 개발과 경제 발전은 애초부터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김정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딱 두 가지다. 오로지 핵을 붙들고 폐쇄와 고립을 자초하며 주민의 삶을 더욱 더 극한의 고통으로 몰고 가거나, 아니면 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국가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양자택일 해야하는데 불행히도 김정은이 선택하는 길은 국제사회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공언과는 달리 애초부터 핵을 포기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명백해지고 있다.

문제는 김정은 체제를 상대하는 한국 정부의 전략과 정책이다. 지난 4년반 동안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오로지 대화에만 집착하며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는 정책이었다. 그 결과 북한의 비핵화는 요원해졌고 핵개발 수준은 더 한층 고도화됐다. 남북 관계는 남북 관계대로 경색됐고 한국에 돌아온 것은 멸시와 무시뿐이었다. 이제는 국제사회 그 누구도 믿지 않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전제를 깔고 추진하는 문 정부의 정책들은 이미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과 미국 양측 모두가 시큰둥하게 여기는 종전선언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임기말에 이벤트성 남북 대화를 성사시키고 무리한 약속을 남발해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도 곤란하다.

이제 김정은 체제의 다음 10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대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차기 정부는 대북 환상과 비현실적 기대로만 일관해 온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북한 체제와 현실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분석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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