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고 41년간 하반신 마비"…전두환 사망일에 주검 된 형

중앙일보

입력 2021.11.25 05:00

24일 광주광역시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이모(68)씨의 빈소는 유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40여 년 동안 장애와 후유증으로 고통받아온 이씨가 전두환(90) 전 대통령이 사망한 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서다.

이씨 동생은 그의 영정을 앞에 두고 “가해자가 천수를 누리다 갔는데 전두환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도 맘이나 편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수십 년 괴롭힌 총상 후유증…하반신 마비 투병

24일 광주광역시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5·18 유공자 이모(68)씨의 빈소.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숨진 지난 23일 숨진채 발견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24일 광주광역시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5·18 유공자 이모(68)씨의 빈소.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숨진 지난 23일 숨진채 발견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씨는 지난 23일 오후 4시쯤 자신의 고향인 전남 강진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이날 오전 8시 40분쯤에는 전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유족들은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23일 자정께 저수지로 향하던 이씨의 마지막 모습을 봤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22일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5·18에 대한 원한, 서운함을 모두 묻고 가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이틀 뒤인 25일 5·18 후유증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과 지인 등은 “수십 년간 괴롭혀 온 후유증을 견디다 못해 숨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7살에 총상 입어…“가해자는 천수 누렸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오후 2시 30분께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오후 2시 30분께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그는 5·18 당시 계엄군의 만행과 헬기 사격 등을 증언하기 위해 기록한 구술 녹취록에서 자신이 총탄을 맞은 시간을 1980년 5월 21일 오후 7시쯤으로 기억했다.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한 날이다.

그는 5·18때 적십자 구호대로 활동하면서 부상자와 사망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이씨는 “5월 21일에는 적십자 깃발을 보면 계엄군이 발포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총성이 울리는 상황에서 부상자를 구조하려고 접근했다가 척추에 총탄을 맞았다”고 했다.

이후 이씨는 총상 후유증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돼 대소변조차 맘대로 보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은 그를 진통제 주사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다. 총상을 입을 당시 이씨는 27살의 젊은 청년이었다.

“약 먹어도 온몸 붓고 극심한 고통”

지난 2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설치된 전 전 대통령 빈소를 알림 스크린. 함민정 기자

지난 2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설치된 전 전 대통령 빈소를 알림 스크린. 함민정 기자

이씨의 50년 지기 친구 A씨는 “약을 먹으면 온몸이 붓고 설사를 심하게 했었다”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냐”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지인들은 그가 세상을 등질 준비를 하고 있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고 한다. A씨는 “22일 오후 6시쯤 통화를 했었는데 ‘볼 일이 있어서 머물고 있던 전북 익산에서 잠시 광주에 왔다’고만 했다”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통증을 참아가며 휠체어를 타고 1989년 국회 5·18 진상규명 청문회와 1994년 검찰 조사, 2019년 전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만행과 헬기 사격 등을 증언해왔다.

구술록에 남긴 계엄군 만행과 헬기 사격 

24일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 5·18 유공자 이모(68)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숨진 지난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24일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 5·18 유공자 이모(68)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숨진 지난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씨가 남긴 구술록에는 5·18 당시 광주시민들이 처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씨는 “한 여학생이 우리 차를 붙잡고 헌혈을 하고 싶대서 기독병원에 데려다줬는데 계엄군에 총을 맞아 병원에 들어왔다”며 “내가 그 학생을 죽인 듯한 죄책감으로 괴로웠다”고 했다.

헬기 사격에 대한 증언도 남겼다. 그는 “광주천에서 월산동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약 50m 상공에 뜬 헬기에서 총구를 내놓고 총을 쏘는데 다다닥 불빛이 확 나왔다”며 “차에서 내려 대피했는데 총알이 아스팔트에 꽂히는 게 보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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