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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서 판문점까지… 이찬삼특파원 한달 취재기(다시가본 북한: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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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열심히 노는 것도 인민의 도리”/노래시키면 주저 않고 “한 곡조”/통일얘기만 나오면 눈물 글썽
북한사람들은 대체로 딱딱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어디서나 신바람나게 놀기를 좋아한다.
「청룡열차」 등 현대식 어린이 놀이시설이 갖춰진 평양 대성산 유원지에서 8월20일부터 세차례 가족나들이 그룹과 공장노동자들의 합동야유회가 있었다.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했다.
기타나 아코디온을 가져온 사람들은 재치있게 웃기는 동료사회자를 앞세워 노래자랑과 춤판을 벌였으며 다른 한쪽에선 장기나 윷놀이ㆍ주패(트럼프) 놀이에 열중했다.
노래자랑의 경우 처음 나온 사람이 노래를 부른 후 다음 차례를 지명하는 식이었는데 남녀 모두 사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노래자랑이 시들해지면 금방 춤판으로 이어졌다. 당국이 보급한 무도(포크댄스와 흡사)를 학교에서 익힌 탓인지 춤 못추는 사람이 없었다.
템포에 따라 1번에서 7번까지 춤의 종류가 정해져 있어 리더가 번호만 외치면 남녀가 익숙하게 돌아갔다.
사회자가 『다음은 3번춤』이라고 알리면 파트너의 손을 맞잡거나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웃거리며 정답게 돌아가다 다시 『7번춤』이라고 소리치면 디스코풍의 빠른 템포의 형식으로 바뀌었다.
1만5천명이 일하는 평양종합방직공장을 방문했을 때 만난 「직포공」 리경숙 양(23)은 『주말마다 빠짐없이 열리는 무도회를 가장 좋아합니다』라면서 『혁명투쟁(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하고 또 휴식할 때는 그만큼 성의있게 노는 것이 인민의 도리』라고 했다. 일과 후 기숙사에서 취침시간 전까지 1인 1기 교양사업을 벌여 그녀는 하모니카를 배웠다고 했다. 「놀 때도 일할 때도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다.
북한사람들은 이런데 익숙해진 탓인지 장난삼아 『노래한번 해보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았다.
○1인 1기 교양사업
화투는 북한사회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중국과 몽골의 영향을 받아 서양의 트럼프가 주패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돼 있다.
장기도 우리와 두는 방법은 같았으나 장기판의 넓이가 거의 네배에 가까웠고 「차」 「포」 등 한글로만 적혀 있었다.
8월29일 오후 6시 평양시내 「경흥관 결혼식 식당」을 방문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의대 동의학과(한방과)에 입학한 대학생 신랑 리광용 씨(29)와 평양경공업위원회 은하무역회사 노동자 박미향 양(26)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미리 통고가 된 듯 사회자 겸 주례자가 『남조선 기자선생님이 지금 도착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신랑ㆍ신부는 기자에게 다가와 갖고 있던 꽃다발을 안겨 주며 꾸벅 절을 했다.
삽시간에 주객이 뒤바뀌어 기자는 주석단(주빈석)에 강제로 안내돼 신랑ㆍ신부와 나란히 앉게 됐으며 하객들 모두가 오랫동안 환영박수를 치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곧이어 노래와 춤판이 벌어지고 저마다 축배를 들자고 찾아왔다.
이날 잔치는 완전히 기자의 환영회로 돌변했다.
청에 따라 기자가 「당신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라는 가사의 대중가요 『행복』을 불렀더니 장내는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수령과 지도자 이외의 개인을 목숨바쳐 사랑한다는 노랫말이 기이하게 생각됐던지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창 흥이 돋자 술취한 신랑친구의 난폭한 행동으로 술잔이 깨지기도 했으나 무도회는 한 여성의 아코디온 반주에 맞춰 장시간 계속됐다.
이날의 예식장 연회는 북한의 결혼식중 특별한 경우이고 절대다수는 일반가정에서 조촐하게 베풀어진다. 주로 신랑집에서 갖게 되는 결혼식에 신부측은 가족 등 몇 사람만 참석할 뿐이다.
가정에서 식이 끝난 후 신랑ㆍ신부는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고향집」이나 만경대 소년문화궁전 부근 분수대 앞에서 흑백사진을 촬영하고 신부집에서 첫날 밤을 보낸다고 한다.
예물은 만년필 정도이고 하객들은 10원 정도(3천5백원)의 축의금이나 가벼운 선물로 그림액자 등을 준비한다.
신랑ㆍ신부는 웨딩마치에 맞춘 입장절차 없이 미리 주빈석에 2명의 들러리(주로 가족)와 함께 앉은 후 사회 겸 주례자의 『어버이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배려 속에 결혼모임을 갖겠습니다』라는 말로 결혼식은 시작된다.
『주체의 꽃동산에 한쌍의 부부가 들어서게 된 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배려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는 내용의 주례사에 이어 또다시 『「위대한…」 두 분의 만수무강과 주체의 꽃동산에 들어선 신랑ㆍ신부를 위해 축배를 듭시다』라는 주례자의 제의로 10여분 만에 예식은 끝나고 곧 연회로 이어진다.
결혼연령은 신랑의 경우 29∼30세,신부는 26∼27세가 대부분인데 『강제성을 띤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된 것』이라고 기자를 안내한 「지도원 동지」는 설명했다.
당에서 공부시킨 데 대한 보답으로 국가와 수령님,그리고 인민들을 위해 사회에 나와 적어도 4∼5년 정도는 봉사하다가 가정을 이루는 것이 도리라고 결혼적령기 여성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도 점차 바뀌어 남자 27세,여자 24세 정도에서 결혼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고 경흥관 봉사원이 귀띔했다.
평양건설건재대학에 재학중인 리성준 씨(27)와 지방공업총국 노동자 김혜영 양(24)의 결혼식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과거에는 당에서 주선해주는 등 중매결혼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최근 수년 사이 연애결혼이 급격히 늘어나 중매와 연애결혼은 50대50 정도라고 했다.
○최근 연애결혼 늘어
여성의 경우 대학재학중에는 절대로 결혼할 수 없다는 것도 일종의 불문율로 통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사람들은 각종 나들이와 직장 야유회,또는 결혼식 연회 등에서 놀기도 잘하는 반면 울기도 잘했다.
유치원 아이들에서부터 노인들에게 이르기까지,특히 「남조선」과 「통일」,그리고 「수령님」에 관한 이야기 끝에는 예외없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특히 「범민족대회」 기간중 연도에 나온 인민들과,김일성경기장 군중집회에서의 노동자들,개성ㆍ원산 등 지방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눈물은 잊혀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8월13일 오후 11시쯤 백두산 밀영(항일투쟁 때 비밀병영)에서 중앙일보 홍콩특파원에게 국제전화로 송고하던 날,교환양 신춘화 양(21)은 기자와 통일에 관한 토론을 벌이던중 『만약 통일이 되면 대통령은 누가 해야 하나』라고 묻자 너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위대한 수령님은 어리신 시절부터…』
어쩔 줄 몰라하던 신양은 울기만 했다.
『통일 이야기 외엔 이 행복한 생활에서 울일이 뭐 있겠습니까.』
평양에서 만난 30대 가정주부 오명희 씨의 말이다.
북한사람들의 「헤픈」 눈물은 물샐틈 없는 사상교육과 단조로운 생활양식,그리고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순박함」 때문이라고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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