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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역사」의 배상/문창극 워싱턴 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우리가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 당신들은 미국을 더 강하고 긍지있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미국 국민들은 당신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미 법무부 강당안에서 9일 이색적인 행사가 벌어졌다.
미국의 2차대전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을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수용소에 강제억류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들에게 손해배상을 실시한 것이다.
비록 50년이라는 세월은 흘렀으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순간이었다.
미 법무부의 딕 손버그 법무장관은 이날 행사에 대표로 참석한 역사의 피해자 9명에게 2만여달러의 배상금과 부시 대통령의 사과문을 전달했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약 12만명의 일본계 미국인을 전복활동이나 스파이활동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46년까지 수용소에 억류했었다.
미국은 지난 88년 억류조치의 과오를 인정하여 국가적 사과를 하기로 하는 한편 배상을 위해 12억5천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했다.
미 법무부는 이때부터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당시의 피해자들을 찾아 나서 절반이 넘는 약 6만5천여명이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미 정부는 이들이 모두 고령임을 감안하여 매년 약 2만5천여명씩 고령순으로 3년 동안 배상을 실시키로 하고 배상이 결정된 88년 이후 사망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유족에게 이 배상금을 주기로 했다.
1백살이 넘은 사람을 포함,고령으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손버그 법무장관은 『오늘 이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이 나라의 단결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국민 앞에 좀더 성실하고 진지해질 수 있다』고 사과했으며 참석자들은 『미국에 감사할 뿐』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부시 대통령도 사과문에서 『비록 우리가 과거에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지금은 분명히 정의편에 서 있다』고 이들을 위로했다.
이 사죄의식을 지켜보면서 우리와 쓰라린 역사를 가진 일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때 강제징용된 한국인 명부만이라도 확인코자 하는 우리 정부와 유족들의 요구를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는 일본정부와 일본인들이 이 장면을 보고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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