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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여유 있다” 하루 만에, 긴급 징발령 내린 정부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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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증가세가 가팔라진 건 지난 6일부터다. 그날 411명이었는데, 400명을 넘긴 건 지난 8월 31일(409명) 이후 67일 만이다. 지난 1일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작으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확진자가 늘면 곧이어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늘기 마련이다.

속도가 복병이었다. 400명을 넘은 지 사흘 만에 역대 최다(460명)로 치솟았다. 수도권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 병상이 빠르게 찼다. 수도권 중환자 병상 가동률이 평균 71%로 올랐다. 그런데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병상에) 여유 있다”고 평가했다. 전국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 병상 가동률(57.2%)을 근거로 여유를 부렸다. 수도권 71%는 여유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수치가 75%에 다다르면 위드 코로나를 중단하고 방역 수칙을 강화하는 비상계획(서킷 브레이커) 발령을 검토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 시행 2주가 되도록 정부는 구체적인 발령 기준, 시행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여유 있다”던 다음날 위중증 환자는 473명으로 늘었다. 정부는 이날 브리핑에서도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사망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사망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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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유는 하루를 가지 못했다. 위중증 환자가 사흘 연속 최다기록을 경신했다. 중대본은 12일 갑자기 ‘수도권 확진자 증가에 따른 긴급 의료 대응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700병상 이상 종합병원 7곳에 준중환자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내려 병상 52개를 추가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준중증 병상은 지난해 12월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자 병상 활용도를 높이려고 도입했다. 주로 고유량 산소요법이 필요한 위중증 환자용 병상이다. 5~7단계 위중증도 환자 중 5단계에 해당하는 환자다. 무작정 중환자실을 늘릴 수 없다. 암 환자 등 일반 중환자 치료 공백을 우려해서다. 준중증 병상 확보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방증이었다.

정부는 지난 5일에도 상급 종합병원에 병상 동원 행정명령을 내렸다. 준중증 병상 400여 개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병상은 바로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설 등을 갖추려면 통상 4주 정도,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현재 국내 코로나19 의료 대응 여력은 살얼음판이다. 현 체계는 위중증 환자 500명가량을 감당할 수준에 맞춰져 있다. 위중증 환자는 14일 0시 기준 483명이다. 의료 대응 체계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5차 유행이 닥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계속 “여유 있다”는 신호를 줬다.

의료계는 시민들이 위드 코로나를 사실상 코로나19 종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이런 잘못된 신호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대비책을 세우고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지난 9월 위드 코로나 도입을 논의할 때 대전제는 중증환자 병상과 의료진 확보였다. 당시부터 준비해야 했는데, 이제 와 허둥대는 느낌이다. 지난겨울 3차 대유행 때도 중환자 병상 부족으로 곤욕을 치렀고,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이번에도 그럴 조짐이어서 조마조마하다.

중환자실은 대부분 민간병원에 있다. 치료도 민간 상급 종합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진 없이 불가능하다. 건강보험 재정이나 일반예산을 아끼지 말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민간병원도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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