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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상자 규격 다투는 업자들, 세금으로 달래려는 지자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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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지난달 28일 전남의 한 양식장에서 손질 작업을 앞둔 전복들이 상자에 담겨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8일 전남의 한 양식장에서 손질 작업을 앞둔 전복들이 상자에 담겨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지역 지자체들이 전복 업계에 ‘유통용 규격 상자’ 30억원 어치를 지원키로 한 것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지자체는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는 전복 어가들을 위한 지원책이라는 입장이지만 “양식·유통업자끼리 상자 규격을 놓고 벌인 갈등을 혈세로 메꾸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전남도와 완도군·해남군·진도군 등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규격화된 전복 상자 80만개를 전복 양식 어가들에게 지원할 예정이다. 3년간 30억원을 들여 전남지역 3648개 전복 양식어가에게 2.1㎏ 중량으로 일원화된 총 240만개의 전복 유통용 상자를 사주는 게 골자다.

전남도는 “불경기에 직면한 전복 양식어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전남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3만6087원이던 전복 평균가격(10미 기준)은 올해 7월 현재 3만1400원대로 낮아졌다.

전남도 관계자는 “올해 1월만 해도 3만8000원에 달했던 10미 전복 가격이 6개월새 17%가량 떨어진 것”이라며 “추석 이후로 제대로 된 전복 출하 물량도 없어 어가를 돕는 차원에서 유통 상자를 현물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남도 안팎에서는 “전복 상자 중량을 놓고 일어난 분쟁을 차단하기 위해 지원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019년쯤부터 전남지역 전복 양식업자와 유통업자들이 규격화되지 않은 전복 유통 상자 때문에 갈등을 빚어와서다.

그동안 양식업자와 유통업자들이 전복 거래에 사용해온 상자 중량은 2.1㎏을 기준으로 했다. 여기에 양식업자들이 전복 10㎏을 담아 납품하는 데 물을 머금은 전복 무게와 유통 과정에서 폐사하는 전복 양을 고려해 10~18%의 무게를 더 쳐주는 방식(로스율)으로 거래해왔다.

이 과정에서 유통업자들이 양식어가에 전복 10㎏ 출하 시 2.1㎏의 상자 무게와 4~5%의 폐사율을 적용해 3~4㎏의 전복을 추가 납품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양식어가에서는 “유통업체들이 2.1㎏보다 더 낮은 중량의 상자를 이용해 이득을 보면서 추가 물량까지 요구한다”고 맞섰다.

분쟁 끝에 전남지역 전복 양식업자와 유통업자들은 지난해 2.1㎏ 중량으로 통일한 별도의 상자를 구매해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양식업자가 220만개 상자를 사는 대신 유통업자는 10~18% 로스율을 8~12%(완도 기준)로 낮추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또다른 비용 문제가 발생했다. 규격화된 유통 상자를 추가로 도입하더라도 유통 과정에서 회수하지 못하는 상자를 계속 사야 해서다. 이에 양식어가에서 “매년 유실되는 80여만개의 유통 상자 재구매 비용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고, 전남도와 지자체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매년 80만개의 유통 상자를 사는 데 필요한 비용은 총 21억원이다. 이 중 50%인 10억5000만원을 양식업자들이 부담하고 전남도가 3억1500만원, 완도·진도·해남군 등이 총 7억3500만원을 부담한다. 3년 동안 구매하는 240만개 분량 중 120만개를 지자체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전복 생산업자와 유통업자들의 분쟁 때문에 생긴 비용 문제에 지자체들이 특혜를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전남도는 “민간 지원 사업에 대한 지자체 예산 투입 비중이 통상 60%를 상회하는 것에 비교하면 자부담 비중이 큰 편”이라며 “전복 어가들이 경영난에 처하기 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지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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