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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그림’과 함께 ‘인생사진’…중증자폐 화가 ‘패밀리의 기적’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앙일보 새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11월에도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사연을 모십니다.
 보내주신 사연은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인생 사진'에 응모하세요.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9차 마감: 11월 30일

가족의 오랜 꿈이었던 갤러리에서 한부열 작가의 작품을 걸고 모두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엄마, 아빠, 동생은 작가 한부열의 든든한 지지자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족의 오랜 꿈이었던 갤러리에서 한부열 작가의 작품을 걸고 모두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엄마, 아빠, 동생은 작가 한부열의 든든한 지지자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 아들 한부열은 중증 자폐 장애인 화가입니다.
그렇지만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니 프로 작가인 거죠.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임에도
자신의 확실한 직업을 가진 겁니다.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몰두하며 지냅니다.

사실 우리 가족들은
중국에 삶의 터전이 있습니다.
남편의 사업 때문이죠.
그런데 아들이 한국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데다
코로나 때문에 거의 생이별 상태로
1년 5개월을 지냈습니다.
남편과 딸은 중국에,
저와 아들은 한국에서 떨어져 지낸 겁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들은
코로나로 인한 생이별을 잘 이해 못 합니다.
수천 번 말로 설명해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아들은 말을 잘하지 못하니
자신의 표현도 무척 서툽니다.
답답한 심정을 그림과 글씨로 써가며
수도 없이 반복하여 제게 요구합니다.

“부열이 옷 가방 싸서 청도 가야지.”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못 가.”
“코로나 나빴어. 아주 나빴어요.”를 반복하는
저와 아들의 대화,
천 번도 넘는 것 같네요.

그 17개월 동안
아들과 제게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정들이 취소되고
활동 영역이 줄어드는 바람에
생활의 패턴이 다 무너졌습니다.

답답함을 풀어낼 길이 없으니
아들의 틱 행동이 더 심해졌고,
저 또한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무력감만 들었습니다.

뭔가 돌파구가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꿈만 꾸고 있었던 일을
저질러버렸습니다.
바로 아들의 개인갤러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에
작은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Gallery HBY』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HBY’, 제 아들 한부열의 이니셜입니다.

개관 전으로 미국 샌디에이고 매들린 소피 갤러리
발달 장애 작가와 한국의 발달 장애 작가의
교류전을 하였습니다.

꿈에 그리던 개인 갤러리에서
국제교류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 덕분에 전화위복이 된 겁니다.

그 바람에 “더는 이산가족 못 하겠다”를 외치며
남편과 딸이 지난 6월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무려 17개월 만에 온 가족이 모인 겁니다.

우리 가족 삶의 큰 전환점이 될 『Gallery HBY』에서
모처럼 다 모인 우리 가족의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한부열 엄마 임경신 올림

한부열 갤러리는 이 가족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어렵사리 만든 갤러리에서 1년 5개월 만에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부열 갤러리는 이 가족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어렵사리 만든 갤러리에서 1년 5개월 만에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연을 본 순간,
한부열 작가와의 만남이 대뜸 떠올랐습니다.
4년 전인데도 제겐 부끄러웠던 기억이니
또렷이 기억났습니다.

당시 그는 강원도 속초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과 그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광화문 신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전시된 작품 70여 점이 모두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요.
그만큼 그의 작품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겁니다.

그는 중증 자폐를 가졌습니다.
그러니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 한 가지에만 매진합니다.
그림을 그리면 양손 엄지손가락에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그림에만 매진하는 거죠.

지문이 닳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한부열 작가의 엄지손가락은 이 가족에겐 자랑이 되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문이 닳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한부열 작가의 엄지손가락은 이 가족에겐 자랑이 되었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실제로 주민등록을 새로 만들 때
지문이 나타나지 않아 애먹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니
2013년에 화가로 데뷔하여
지금껏 24회의 전시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우리나라의
발달 장애인 화가 그룹에서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습니다.
당시 그가 화가로 시작할 즈음
우리나라엔 발달 장애인 화가가
거의 전무했었습니다.
이러니 요즘에는 그를 두고
‘발달 장애인 화가계의 원로’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입니다.

작가로서 한부열은 반열에 올랐습니다.
한 작가가 올 10월
이원형AWARD를 수상하기도 했으니까요.

한부열 작가 올 10월 수상한 이원형AWARD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상패를 통해 어긋난 눈은 마치 그의 작품처럼 독특하게 찍혔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부열 작가 올 10월 수상한 이원형AWARD 상패를 들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상패를 통해 어긋난 눈은 마치 그의 작품처럼 독특하게 찍혔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지만 한 작가는
사진기자에겐 참으로 어려운 인물입니다.

4년 전 저는 한 작가로부터
일생일대의 곤욕(?)을 치른 적 있습니다.

그는 당최 사진 촬영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세계에만 몰두했습니다.
숫제 엎드려 버렸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한 작가를 일으켜
함께 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화가 개인 인터뷰 기사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해야 했고요.

제대로 사진 찍지 못한 부끄러운 기억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고 갤러리를 찾았습니다.
가면서 다짐 또한 했습니다.
한 작가와 반드시 눈 맞춤을 하리라면서요.

갤러리에서 만난 한 작가의 가족은
놀랍게도 이구동성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우린 한부열들러리입니다.
한부열만 신경 써 주세요.”

말은 들러리라 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한부열 작가의 든든한 응원군입니다.

손 많이 가는 아들을 옆에 두고
홀로 갤러리를 만들어 낸 엄마,
중국 전시 자료 준비와
번역 및 통역을 맡는 동생,
스스로 한부열 대표(Gallery HBY가
중소 벤처 기업부에서 장애인 사업장으로
승인받은 터라 한 작가가 갤러리의 대표임)의
직원을 자처한 아빠,
이렇듯 온 가족이 한부열 작가를 위해
똘똘 뭉친 겁니다.

똘똘 뭉친 가족의 사진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작가는 딴청입니다.
마치 눈빛으로 저와 밀당하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아주 잠깐 스치듯 저와 눈 맞춤했습니다.
스친 눈 맞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갤러리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눈에 띄는 한 작가의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아빠와 동생이 빛 좋은 곳으로
그 작품을 옮겨와 들고 섰습니다.
엄마와 한 작가는 서로 부둥켜안았습니다.

한부열 작가와 오래도록 눈 맞춤한 장면입니다. 이 눈 맞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가족이 뒤에 있기 때문 일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부열 작가와 오래도록 눈 맞춤한 장면입니다. 이 눈 맞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가족이 뒤에 있기 때문 일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때였습니다.

한 작가가 저를 오래도록 바라봤습니다.
그를 뒷받침하는 가족과,
그의 분신인 그림과 함께니 겁날 게 없었나 봅니다.
오래도록 저를 바라보는 그의 싱긋 웃음에
4년 치 부끄러움이 씻겨내리 듯했습니다.
그것으로 그날의 촬영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며칠 후
한 작가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11월 3일부터 30일까지
『Gallery HBY』에서 한부열의 개인전 ‘비상’을 엽니다.
한부열의 비상을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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