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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신붓감이었죠 하하" 공장과 함께 다닌 학교, 추억 40년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 새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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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마감: 11월 30일

40년 전에도 기숙사 벽을 덮어 운치를 더해줬던 담쟁이가 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벽을 덮고 있습니다. 두 친구의 변함없는 우정처럼 말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40년 전에도 기숙사 벽을 덮어 운치를 더해줬던 담쟁이가 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벽을 덮고 있습니다. 두 친구의 변함없는 우정처럼 말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저는 경주시 안강읍에 거주하는 58세 손정애입니다.

오래전엔 집안의 큰딸을 살림 밑천이라고도 했죠.
사실 1980년대엔 아들과 달리
딸은 남의 식구라며
공부시키기 꺼리던 시대였습니다.

저 역시 4남 2녀 중 큰딸로
공부 대열에서 제외된 인물이라
중학교 졸업 후 산업체 학교로 진출했습니다.

사실 중학교도 큰 오빠가
당시 11,370원인 입학금을 주어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했던 십 대의 마지막 끝줄,
객지에서 만난 친구가 있습니다.
20대의 첫 줄에서 만난
친구 같은 애인이기도 하고요.

우린 대구 제일모직에서 3교대 근무하면서
산업체 학교인 성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친구로 정을 다졌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는 친구,
늘 그리워하면서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친구,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쉼터가 된
그 친구와의 인생 사진이 가능할까요?

30년쯤 지난 어느 날,
대구 삼성창조캠퍼스에 들른 적 있었습니다.
푸른 청춘의 출발지였던
그곳에서 뜨거운 감정을 다시 건졌습니다.

다시금 푸른 청춘의 출발지에서
나의 친구 이경혜와 다졌던 시간을
인생 사진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손정애 올림


그 엄했던 기숙사이건만 두 친구(왼쪽 손정애, 오른쪽 이경혜)는 다시 그 기숙사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 안에서 나누고 다졌던 정이 깊디깊었기 때문일 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 엄했던 기숙사이건만 두 친구(왼쪽 손정애, 오른쪽 이경혜)는 다시 그 기숙사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 안에서 나누고 다졌던 정이 깊디깊었기 때문일 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구 삼성창조캠퍼스를 찾았습니다.
그들이 다녔던 제일모직,
성일여자실업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둘이 함께 이 자리에 온 건 무려 34년 만입니다.
그렇기에 둘은 오랜 간극만큼 가물가물하는
옛 기억을 더듬기에 바빴습니다.

당시엔 모두 6동이던 기숙사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문화공간이나 카페로 변했지만 그들의 기억을 되살리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시엔 모두 6동이던 기숙사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문화공간이나 카페로 변했지만 그들의 기억을 되살리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회사와 학교는 그 자리에 없지만,
다행히도 옛 기숙사의 흔적은 남아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둘은 연신 “엄마야!”를 외쳤습니다.
이는 그들이 34년 전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의 감탄사였습니다.
그리고는 시시때때로 “눈물난다야!”며
서로 맞장구쳤습니다.
청춘의 추억을 오롯이 만나니
이리도 만감이 교차하는 겁니다.

두 친구는 창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며 기억을 더듬습니다. 이내 목욕탕과 다림질 방이 있던 공간 임을 알아챘습니다. 아울러 그 기억이 작업복도 구김 하나 없이 다림질했던 어린 시절의 그들로 이끌었습니다.

두 친구는 창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며 기억을 더듬습니다. 이내 목욕탕과 다림질 방이 있던 공간 임을 알아챘습니다. 아울러 그 기억이 작업복도 구김 하나 없이 다림질했던 어린 시절의 그들로 이끌었습니다.

두 친구가 들려주는 기숙사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기숙사 규율이 무척 엄했습니다.
손도 못 잡고 다니며,
좌·우측 한 줄로 서서 뒤꿈치 들고
조용조용히 다녀야 했고요.
작업복마저도 다림질해서 입어야 했죠.
머리도 삐져나오지 않게끔
단정히 올려서 꼭 모자를 써야 했고요.
하긴 이리 엄하게 교육받았으니
‘제일모직 다니면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사실 당시 제일모직 직원은 신붓감 1위였죠. 하하.”

두 친구의 이야기에 자부심이 배어있었습니다.

둘이 이곳으로 오게 된 계기를 물어봤습니다.
먼저 손정애씨가 답했습니다.
“아버님이 아들은 대학 보내면서도
딸은 공부하면 안 된다며 못하게 했죠.
그래서 책보를 대문 옆에
숨겨 놓고 다니곤 했어요.
사실 어떻게든 공부하려고
제일모직으로 온 겁니다.
남들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에
우여곡절 끝에 늦게라도 온 거죠.
제가 공부 욕심이 좀 있는 편이예요.
기숙사는 취침 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요.
정해진 시간에 불을 다 꺼야 하죠.
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손전등을 켜고 책 봤어요.
일하면서 공부하려니
참 많이 잠이 부족할 때인데도 그랬어요.
지금에서 보니 그리 공부한 게 별로 쓸데도 없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하하하.”

식당 앞에 있던 느티나무입니다. 그들이 식사 후에 그늘에서 쉬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두 친구는 고 이병철 회장이 심은 느티나무라고 기억해내며 아울러 그 시절 사진 찍던 포즈까지 기억해냈습니다.

식당 앞에 있던 느티나무입니다. 그들이 식사 후에 그늘에서 쉬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두 친구는 고 이병철 회장이 심은 느티나무라고 기억해내며 아울러 그 시절 사진 찍던 포즈까지 기억해냈습니다.

친구 경혜씨가 이야기를 거들었습니다.
“정애는 글재주가 있었어요.
정애가 학교 경시대회에 쓴 글을
선생님이 각 반으로 다니며
읽어 주기도 할 정도였어요.
참 올 5월엔 정애가 시집도 냈어요.
제목이 〈바람이 전하는 말〉이에요.
그리 어렵사리 공부한 게
이리 쓸 데가 있는 거죠. 하하.”

“그럼 경혜씨는 여기에 어떻게 온 겁니까?”
“저 또한 아버지가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어차피 못 갈 고등학교니
만화책에 겉표지를 싸 영어, 수학, 국어 써서
중학교 다니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많이 혼났죠.
참 방황을 많이 했어요.
어느 날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언니야. 우리 고등학교는 나와야 안 되겠나?
고등학교 있는 회사로 가보자”라고요.
그래서 동생과 함께 여기로 왔어요.”

여기저기 보이는 건 죄다 이들의 34년 전의 추억입니다. 둘은 연신 ″이것 좀 봐봐″라며 서로를 이끌기 바쁩니다.

여기저기 보이는 건 죄다 이들의 34년 전의 추억입니다. 둘은 연신 ″이것 좀 봐봐″라며 서로를 이끌기 바쁩니다.

“그럼 둘은 어떻게 친해지게 된 겁니까?”
“입사 동기예요. 1981년 6월 1일 입사한….”
“친구니 나이가 같겠네요?”

둘이 얼굴을 마주 보며 빙긋이 웃기만 했습니다.
둘 다 답을 못하며 한참 정적이 흘렀습니다.

한참 망설이다가 먼저 정애씨가 말했습니다.
“엄마야! 그러고 보니 서로 여태껏
나이를 한 번도 안 물어봤네요.
저보다 한살 많지 않을까 짐작만 했을 뿐…. 하하.”

경혜씨도 이어 답했습니다.
“저도 정애가 저보다
한 두살 많지 않을까 짐작만 했어요.
뭐 나이는 중요하지 않죠.
숫자에 불과하니까요.
하하! 나이도 알아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가깝게 지낸 거죠.”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은 스무살 남짓 무렵 대구 달성공원에서 둘이 한껏 멋내고 찍은 사진입니다. 직장다니랴 공부하랴 바쁜 가운데서도 둘은 짬날때마다 이리 우정을 다졌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은 스무살 남짓 무렵 대구 달성공원에서 둘이 한껏 멋내고 찍은 사진입니다. 직장다니랴 공부하랴 바쁜 가운데서도 둘은 짬날때마다 이리 우정을 다졌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말 나온 김에 따져봤습니다.
정애씨가 한살 많았습니다.
경혜씨가 결혼하면서
제일모직을 떠난 지 34년 만에,
둘이 만난 지 40년 만에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된 겁니다.

둘은 한창 나이 따질 어린 나이에도
서로의 나이를 알 필요 없이
그렇게 서로가 의지하며
우정을 쌓아 온 친구인 겁니다.
그렇게 쌓은 40년 우정,
서로의 쉼터가 된 겁니다.

당시 창틀이 그대로인 건물을 지나며 두 친구는 또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며 맞장구쳤습니다.엄격한 사감의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창틀의 먼지 하나조차 깨끗이 닦았던 기억입니다.

당시 창틀이 그대로인 건물을 지나며 두 친구는 또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며 맞장구쳤습니다.엄격한 사감의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창틀의 먼지 하나조차 깨끗이 닦았던 기억입니다.

둘은 손을 꼭 붙잡고 그들 청춘의 흔적을 더듬었습니다.
그러다 경혜씨가 정애씨에게 말했습니다.
“정애야. 공장은 다시 다니라면 다니기 싫은데
기숙사는 다시 들어가라면 다시 가고 싶네.”

정애씨도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답했습니다.
“나도 그래.”

이날 둘의 기억은 오래도록 기숙사에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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