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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으며 죄책감?…즐겁게 먹자, 나를 위해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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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먹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예찬하는 두 여성, 이은빈(오른쪽)과 김지양.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먹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예찬하는 두 여성, 이은빈(오른쪽)과 김지양.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유명한 김지양(35), 차(茶)와 생활을 다루는 기업의 대표인 이은빈(34). 이들이 함께 쓴 책  『죄책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야』는 음식에 대한 진심 깃든 찬미가 가득하다. 도마질 소리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된장찌개 이야기, 맨밥에 비비면 훌륭한 한 끼가 되는 비빔밥 소개부터 파운드 케이크의 폭신한 감촉까지, 먹는 황홀함이 세세히 묘사돼 있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어떻게 먹었는지 서술한 음식 에세이다.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행복한 두 사람이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날카롭다. 27일 중앙일보와 만난 이들은 “한쪽에서는 먹방과 같은 푸드 포르노가, 다른 한쪽에는 마른 몸에 집착하는 섭식장애가 있는 이상한 사회”를 비판했다. 이들이 ‘먹는 기쁨’ 예찬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다. 이은빈은 “먹는 게 행복하면 먹으면 된다”고 했고, 김지양은 “우리처럼 행복하게 먹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각자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어떤 걸 먹을 때 행복한지 정확히 알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늘 즐겁게 먹는다. “혼자 살지만 20인분 끓여낼 곰솥이 있고, 집에서 랍스터를 찌거나 마라탕을 끓여 먹는다.”(김지양) “한때는 1일 1케이크를 했고, 도넛은 12개를 앉은 자리에서 먹었다. 딸 둘인 엄마가 장을 보러 가면 ‘아들만 서넛인가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이은빈) 특히 ‘한 끼 때우면 그만’이라든지 ‘어떤 메뉴든 상관없다’는 사람이 있으면 열성적으로 메뉴를 정해준다. 무엇보다 맛있고 즐겁게 먹은 뒤 ‘살찌면 어떡하지’하고 후회하는 수많은 여성에게 음식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우고자 한다.

자유롭게 마음껏 먹는 여성, 먹는 게 즐겁다고 말하는 여성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여성이 자유롭게 양껏 먹는 일이 쉽지 않다. “우리의 친구들은 방울토마토 개수를 세면서 먹었고, 심지어 우리가 20대일 때는 여성의 근육도 금기시돼서 운동조차 하지 않았다.”(이은빈)

김지양은 대학 졸업 후 여행잡지사에 취직했지만, 창간 전에 회사가 문을 닫았다. 막다른 길에서 모델에 대한 적성을 발견해 2010년 미국 ‘풀피겨드 패션위크’에 한국인 최초로 데뷔하면서 플러스 사이즈의 모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금은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을 위한 잡지와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고, 여성의 몸과 편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신체 사이즈에 대한 강박으로 섭식장애를 겪는 여성들을 위한 모임도 이끈다.

고등학생 시절 우울증 때문에 갑자기 체중이 불었던 김지양은 “편견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인만큼 어떻게 하면 그 편견에서 벗어날지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미에 집착하는 대한민국의 여성에게 죄책감 없이 먹는 일은 정말 어렵고, 이 때문에 먹는 즐거움마저 잃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이은빈은 고등학생 때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공부하면서 차의 매력에 빠졌고, 서른살에 차와 관련한 회사를 창업했다. “어려서부터 늘 춤추고, 운동하고 몸을 움직이면서, 그만큼 미친 듯이 먹었다”고 했다. 또 “원래 나 자신을 사랑하는 성격이어서 몸에 대한 획일적 잣대를 참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먹는 즐거움에 장애물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은빈은 “음식은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따라서 먹기는 즐겁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칼로리 계산, 사회적 시선 때문에 고유한 즐거움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했다. 대신 음식의 위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김지양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난 다음 날 먹었던 먹태구이’, ‘혼자 살며 극도로 외롭고 우울했을 때마다 친구들을 불러 먹었던 한 무더기 5000원짜리 자반고등어’의 기억을 책에 적어넣었다.

이은빈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 시작하면서 죄책감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무엇을 먹었을 때 가장 즐거운지, 얼마나 먹었을 때 기분이 좋은지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바깥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몸의 상태를 기준으로 먹는 양을 정하게 된다.” 건강과 음식의 절대적 관계도 강조했다. “무조건 많이 먹으라는 뜻이 아니다. 먹으면서 정신과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김지양 또한 “내가 지금 뭘 먹고 싶고, 내 몸에는 어떤 영양이 필요한지 귀 기울여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양은 ‘합정동 큰손’ 이은빈은 ‘운동 전도사’로 자신을 칭한다. 다른 사람과 같이 즐겁게 먹고, 몸을 신나게 움직이자고 한다. “그거면 됐죠. 뭐가 더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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