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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질병은 기로 다스려야죠"-한의서 『하늘·땅…』펴낸 황인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황인태씨(29)가 펴낸 『하늘·땅 그리고 우리들』은 침(침)과 뜸(구)을 중심으로 한 한의학 해설서다.
침은 우리의 기를 받아들여 병을 치료하는 하늘 치료법이며 뜸은 땅의 기를 이용하여 병을 다스리는 땅 치료법.
여기에 인간세상의 법도를 응용하는 치료법으로 약이 있으니 한방의학에서 말하는 일침이구삼약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급한 병에 으뜸은 침이요, 두번째는 뜸이며, 세번째는 약」이라 풀기도 하고, 혹 「침은 단 한대만으로 효과가 있고, 뜸은 두번, 약은 세 첩은 써야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맞는 소리인가.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침과 뜸과 약이 급한 병을 다스림에 다 제자리 쓰임이 따로 있고 실제로도 약 한 첩만으로 효험을 보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꼭이 침 한대, 뜸 두번으로 증세가 좋아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일침이구삼약의 일·이·삼이란 숫자를 단순히 병증을 다스릴 때의 순서나 중요도로 물어서는 안되며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인간의 모습을 빌린 세가지 치료법의 변증법적조합의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한의학의 특성은 누구나 값싸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민중성에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한의학에서 그 민중성이 사라져가고 기나 자연을 강조하는 치료법의 본질마저도 무시되기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예컨대 한약만 해도 이젠 어지간히 돈 많은 사람이 아니고는 어디 감히 써볼 생각이나 할 수가 있습니까. 침과 뜸은 민중의 의학, 기의 의학, 자연의 의학으로서의 한의학적 특성과 본질을 그나마 가장 오염없이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는 그런 깨달음과 함께 이왕이면 침과 뜸의 시술법을 한의사만 움켜쥐고 있을 게 아니라 민중모두가 스스로 쉽게 다룰 수 있는 건강법으로 보급시키는 일이 긴요하다는데 생각이 미쳐 이 책을 펴내게 됐다고 한다. 특히 침구용어가 워낙 어려운 한자어로 돼있어 한글세대를 염두에 두고 그걸 일일이 풀어서 설명하는데 힘이 들었다.
지난 5월초 집필을 시작해서 꼭 4개월만인 9월7일에 끝을 냈다. 여름 한철의 그 숨막히는 더위와 변덕 많은 날씨를 자신이 개업중인 한의원 골방에 틀어박혀 이 책 쓰는 일로 죽였다. 그 동안 둘째 마로가 태어났으나 총망중에 흘긋 얼굴만 두어번 스쳤을 뿐이었다. 『경륜을 갖추고 앎이 무르익어서 나오는 저술이 있는가하면 저처럼 구상유취라도 열심히 묻고 배워서 내놓는 저술도 있지요. 내용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턱에도 닿지 않는 꿈이고 그저 한의학에 깜깜인 사람들을 상대로 상식을 중개하면서 크게 오류나 범하지 않았는지 그것만이 걱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늘·땅 그리고 우리들』은 전체를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토막으로 나누어 설명을 펴고있다.
일·이·삼 등의 숫자로 편장을 가름하지 많고 계절이름을 쓴 것은 인간의 몸을 오고가고 또 가고오는 가없는 순환을 거듭하면서도 한순간도 어김이나 흐트러짐이 없는 우주운행의 질서로 표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봄편에서는 침을 배우는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생각의 방식들을 정리했고, 여름편에서는 기초편과 경혈편으로 나누어 침 자리를 정확하게 짚는 방법을 소개했다.
가을편에서는 질병에 따라 치료혈을 선택하는 배혈법을, 겨울편에서는 실제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할 사항들을 실명했다.
책 전편에 담겨있는 그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침과 뜸은 기로 기를 다스리는 의료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질병은 기가 통하지 않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니(불통즉통) 그 막힌 기를 뚫어주면 아픈 것이 사라지고 병이 낫는다(통즉불통)는 설명이다.
침을 놓는 단순한 기술보다 낫게 하고자 하는 마음과 낫고자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그 때문이며 의사와 환자의 이같은 정성과 신념이 맞닿아 교감하면 활인의 기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의사가 몸이 피곤하다거나 진료하는 열에 싫증이 나있을 때, 또는 환자가 진지한 믿음없이 의사를 얕잡아본다는 느낌을 가지고 침을 놓을 경우에는 좋은 효과는커녕 오히려 부작용이 나기 쉽다.
『제 경험이지만 하루 20∼30명씩 온 정성을 들여 침을 시술하고 나면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탈진이 되고 말아요. 기를 빼앗기기 때문이지요. 전해오기로 「침 잘 놓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침을 배운 것은 80년부터다. 그해 원광대 한의대에 입학했는데 방학을 이용, 서울에 올라와 사설침구학원에서 침을 배우기 시작했다. 87년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종로5가 태광한의원에 취업, 하루평균 40∼50명씩의 환자를 맞아 진료하면서 침구에 관한 본격적인 임상경험을 쌓았다.
대학재학 때부터 서클활동 등을 통해 의료혜택에서 소외당한 가난한 계층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힘을 써온 그는 지금도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88년 대치동에 개업한 조그만 한의원 일은 젖혀두고라도 필요할 때마다 전국농민회 후생복지국이나 남부진료소연합회 구로진료소 등을 오가며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구제를 위해 분망하게 뛰고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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