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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친환경차 450만대 보급은 불가능, 부품업계 타격받을 것"

중앙일보

입력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30년 친환경차 450만대 보급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30년 친환경차 450만대 보급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 12일 자동차 업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전국금속노조연맹,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정부에 전달하는 의견서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 이들은 당시 “자동차산업 생태계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2030년 무공해차(친환경차) 보급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 산하 탄소중립위원회가 2030년까지 친환경차 450만대를 보급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한 데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 인터뷰 #차협회·노조 "친환경차 전환 속도조절해야" #전환 속도내면 부품업계·수출 타격 불가피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던 두 단체가 같은 목소리를 낸 건 자동차 산업의 빠른 변화 속도에 그만큼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번 건의서를 주도한 정만기(62)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을 지난 20일 만나 자동차 업계 전반에 드리운 위기감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산업협회와 노동조합이 한목소리를 냈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건 최초다. 탄소 중립으로 인한 생산 감소와 일자리 감소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산업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져야 하는데 다이어트도 너무 급하게 하면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잃는다.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2030년 친환경차 450만대 보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는 뭔가.
“의견서에는 2030년 친환경차 보급이 300만대에 그칠 것이라고 담았지만 실제는 300만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달 기준 국내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는 20만대 수준이다. 2030년까지 8년이 남았는데 450만대를 달성하려면 매년 약 54만대를 보급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연간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차가 글로벌 기준 15만대다. 이중 국내 판매량은 7만대다. 한국GM과 르노삼섬 등은 아직 친환경차 생산 계획도 잡지 못했다. 플랫폼과 모델 개발에 최소 4~7년이 걸리는데 산술적으로 2030년 450만대 보급은 어렵다.”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달성하면 산업생산액이 3조원 감소한다고 했다.
“자동차연구원이 친환경차 385만대 보급을 가정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매년 산업생산액 3조원, 부가가치 1조원 감소가 불가피하다. 450만대 목표치를 달성하면 산업생산액과 부가가치 감소액이 각각 6조원과 2조원에 이를 수 있다.”

정 회장은 “미래차 전환에서 가속페달만 밟으면 국내 자동차 부품사가 안팎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라며 “해외 경쟁사에 비해 취약한산업 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30년 친환경차 450만대 보급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회장은 "2030년 친환경차 450만대 보급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친환경차 전환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유럽·일본도 비슷한데 유독 한국 기업이 취약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
“국내 자동차 부품기업 중 82%는 매출 100억원 미만이다. 그만큼 영세한 기업이 많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자동차) 부품 기업 중 46.8%는 엔진과 동력계 관련 기업으로 친환경차 전환 시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한국은 자동차 부품 국산화 비율이 높아 경쟁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자동차 부품 교역액 중 수입 비중은 미국 61.7%(2019년 기준), 독일 38.9%, 일본 19.7%지만 한국은 16.7%다. 전기차로 전환해도 미국은 자국 내에서 부품을 수급하지 않기에 타격이 크지 않다. 수출만 놓고 봐도 그렇다. 자동차 부품 교역 중 수출 비중은 한국은 83.1%이고 미국은 38.3%다. 전동화가 속도를 내면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도 한국 자동차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게 중국 자동차 기업이다. 내연차 시절에는 세계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했는데 전기차로 시장 판도가 바뀌면서 이제는 칼을 갈고 있다. 이제는 서방 세계와 진검승부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3000만대 내수 시장인데 5000만대까지 생산할 수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는 완성차를 수출하지 않지만 부품 산업에는 진출해 있다. 한국에도 전기차 부품을 중심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바람직한 미래차 전환 방법이 있나.
“내연기관차가 미래차 전환에서 일정 시간은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전기차 부품 개발에서 생산까지 최소 4~7년 정도가 걸리는데 그 기간에는 비수익 자본투입이 불가피하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 등 내연차 수요가 일정기간 지속하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바이오연료, 수소연료차, 합성연료(e-fuel) 기술혁신 등 친환경차 시장에 변화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K-배터리가 선전하고 있는데.
“장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약점일수도 있다.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를 통해 미래차 전환에서 불필요한 인력을 배터리로 돌린다. 벤츠와 BMW도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은 배터리 산업이 강해 자동차 업체가 그렇게 할 수 없다. 재훈련 등을 통해 인력을 조정해야 하는데 공공부문에서도 인력 조정을 도와줘야 한다.”
미래차 전환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나.
“경쟁국 정부는 자국 미래차 산업 보호에 발벗고 나선다. 미국은 지난 9월 하원 등에서 전기차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산 배터리 탑재 시 500달러의 추가 혜택을 부여하는 거다. 일본도 특정 기능을 갖춘 전기차에 대해서만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중국은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만 보조금을 지급했다. 수소전기차 등 국내 친환경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상대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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