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1호’ 피해자 오종상 별세 나흘전 국가배상 받아냈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1 12:00

업데이트 2021.10.21 12:39

1974년 박정희 정권 유신체제 아래 선포된 ‘대통령 긴급조치 1호’를 어긴 혐의로 옥살이한 오종상씨가 재심을 거친 끝에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다. 오씨가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오씨는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한 지 4일 만인 지난 4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법봉 이미지그래픽. 중앙포토

법봉 이미지그래픽. 중앙포토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오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심에서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단한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취소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오씨에게 1억15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2심 판단을 확정했다. 박정희 정권의 위법한 대통령 긴급조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오씨에 대한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유신헌법 비판’ 징역 3년 옥고 오종상씨 36년 만에 무죄

오씨는 1974년 5월 박정희 정권 시절 버스에서 만난 옆자리 승객에게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혐의(대통령 긴급조치 1호·반공법 위반)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에 불법 연행·구금돼 고문을 받아 허위 자백했다. 오씨는 이후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뒤 만기출소했다.

1974년 1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도입한 긴급조치권을 행사해 긴급조치 1호를 공표한 데 따른 피해자였다.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발의·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도 금하며 이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해 1월 장준하·백기완 선생 등도 “유신헌법에 따른 긴급조치는 기본권 탄압”이라며 개헌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10월 오씨 사건을 중대한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피해자에게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재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결정했다.

이후 재심을 청구한 오씨에 대해 대법원은 36년 뒤 2010년 12월 오씨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긴급조치 1호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13년 3월엔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 1·2·9호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 냈지만 ‘좌절’

이를 계기로 오씨는 2011년 7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민주화보상법(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씨가 생활지원금을 받았고 이로써 재판상 화해가 성립했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다만 오씨 자녀 등 가족에게는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며 국가가 9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민주화보상법 제18조 2항에 따르면 보상금 등 지급 결정을 신청인이 동의한 경우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2심은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 대상은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이 아닌 민주화보상법의 보상 청구권”이라며 오씨 본인에 대한 위자료 1억1500여만원을 인정했다.

대법원 모습. 뉴스1

대법원 모습. 뉴스1

하지만 2016년 5월 대법원은 2심과 달리 오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2005년 6월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생활지원금 등 지급 결정에 동의하고 지원금으로 4250여만원을 받아 국가와 오씨 사이에 재판상 화해 효력이 성립됐다”는 이유에서다.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지원금을 받았다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헌재 민주화보상법 위헌 결정 후 대법원에 재심 청구

결국 오씨는 헌법재판소에 민주화보상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다. 헌재는 2018년 8월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기할 수 있다며 오씨 손을 들어줬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한 오씨는 3년이 지난 지난달 30일 헌재 판단에 따라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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