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앞당긴 숨은 공로자들/소련의 한국인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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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리마코프 앞장 지한그룹 형성/마르티노프는 경협 필요성 역설
한소 수교가 양국의 몇몇 정치인이나 관료들만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그보다는 알게 모르게 두나라 문지방을 넘나들며 서로의 교감대를 형성한 소련내 한국통인사,한국내 소련통 민간인사들의 역할이 더욱 돋보인다.
때문에 본격적인 한소교류를 앞두고 소련측 정책결정자들에게 한국과의 수교 필요성을 절감시킨 소련내 지한인사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소련은 직업의 형식적 구분에도 불구하고 민ㆍ관의 구별이 모호해 IMEMO(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 소장으로 있을때 서울을 다녀갔던 프리마코프가 어느날 소 연방회의 의장으로 변신했고 역시 지한인사인 뉴타임스지의 편집장 이그나텡코는 고르비의 핵심보좌관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그들은 정치적인 인물이긴 하나 실속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성공시키기 위한 한소간 경제교류에 관심을 쏟아왔었다.
프리마코프의 경우는 소련내 고위정책결정자들에게 대한정책에 관한 상당한 조언을 하는 인물인 동시에 일단의 지한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그나텡코 역시 뉴타임스 편집장시절,한소경협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학자의 논문을 최초로 게재한 인물이다.
프리마코프나 이그나텡코 말고도 그동안의 접촉을 통해 우리 민간경제계가 기억하고 있는 한소 수교의 숨은 소련측 공로자들은 많다.
마르티노프 현 IMEMO 소장이나 말케비치 소 연방상공회의소회장ㆍ골라노프부회장,아르바토프 미­캐나다 연구소장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프리마코프의 뒤를 이어 IMEMO를 맡고 있는 마르티노프는 우리측 민간경제계에 한소관계의 급진전을 이룩한 소련측 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89년 10월 이그나텡코,쿠나제 IMEMO 일본담당부장과 내한한 바 있는 그는 당시 우리측 인사들에게 한소경협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특히 그와 함께 온 쿠나제는 한소수교에 관련되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수차례 발표한 인물이기도 하다.
89년 4월 서울을 다녀간 말케비치 소련연방상공회의소 회장도 우선 소련연방상의 서울사무소를 개설케한 장본인으로 한소수교의 초기단계 책임역을 맡았다.
소련상공회의소회장은 우리 상공회의소와는 달리 각료회의에도 참석하며 소련 대외경제정책의 상당부분을 직접 관리하고 있어 우리측 파트너인 KOTRA 보다는 격이 높은 일을 하고 있다.
말케비치 밑에서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골라노프는 88 서울올림픽 직후인 그해 10월에 현대그룹을 내방,상호합작과 기술협력 등을 현대측과 심도있게 논의하고 갔으며 지난 5월에도 다녀갔다.
소련의 미­캐나다 연구소장인 아르바토프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 미­캐나다연구소라는 곳이 원래 서방 자본주의체제를 집중 연구하는 곳이다.
아르바토프의 한국경제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특히 그는 지난해 9월에 방한,대학에서 강연회를 갖기도 했다.
그밖에 티타렌코 극동연구소장과 한국인 2세인 동양학연구소 수석부소장 게오르기 김(89년 사망)도 하는 일이 한국등에 관한 연구이니만큼 남다른 지한인사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을 다녀간 인사이고 한국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우리에게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양학연구소장이자 전 외무부차관인 카피차의 경우는 지난해 9월 서울을 방문하고 우리측 인사들과도 많이 접촉했지만 한소수교에는 부정적 견해를 가졌던 인물로 우리측 파트너들은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본격적인 대소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기업의 입장에서 소련인물에 대한 관심있는 접근은 보다 확실한 투자를 보장하는 또다른 측면의 수단일 수도 있다.<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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