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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사형 선고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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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이라크 재판부 판결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잘마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 대사는 후세인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에 대해 '민주주의와 이라크 안정을 위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의미심장하다. 골치 아픈 이라크에서 서서히 손을 떼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눈엣가시였던 중동의 독재자 후세인을 단죄하는 것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거둬들일 수 있는 마지막 수확이다. 미국은 이제 이라크에서 상징적인 전리품을 모두 챙긴 셈이다. 미국은 이미 후세인을 권좌에서 제거했으며, 또 그를 체포했다. 미 군정을 거쳐 명실상부한 이라크 주권정부도 올해 초 출범했다. 부시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했던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다.

미국은 이제 이라크 사태 해결을 위해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 3년 반 이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치안 회복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군이 하나 둘 지쳐 떠나는 마당에 치안 회복을 위해 미군을 증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럴 여력도 없다. 정치적인 개입도 줄여 나갈 것이다.

현재 시아파 친미 정권이 이라크 정부를 장악하고 있지만 종교 색채가 강해 미군의 주둔을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올해 초 총선으로 구성된 이라크 의회가 가장 처음 논의한 사안도 미군 철수였다.

미국이 손을 떼고 미군이 철수할 경우 이라크는 분열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라크가 종파.민족에 따라 남부 시아파, 중부 수니파, 북부 쿠르드족의 3개 자치지역으로 나눠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종파.민족 간 갈등의 골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을 정도로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져 올 들어 종파 간 갈등으로 매달 2000~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 정부나 미군 모두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다. 수니파 무장세력이 장악한 지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고, 시아파와 쿠르드족도 정규군 아닌 민병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일 수천 명의 이라크 주민이 자신의 종파와 민족이 몰려 사는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내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라크 3등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에서도 이를 '현실적 대안'으로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가 베트남과 어느 정도는 비슷한 상황임을 인정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3일 "이라크 석유는 지역별로 관리해야 한다"며 3등분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이 가운데 쿠르드족이 미국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을 적극적으로 도운 친미 성향이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숙원인 분리 독립을 위해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시아파 정부 지도자와 달리 쿠르드족 출신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이 기회만 있으면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라크가 3등분될 경우 미군이 철수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도, 유럽에서 터키를 거쳐 중동까지 이어놓은 전략벨트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에 핵 개발 중지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국경을 맞댄 이라크에 미군이 주둔하는 게 유리하다.

이 때문에 미군이 이라크에 계속 머문다면 준전시 상태인 수니파.시아파 지역을 떠나 친미적이고 치안 상태도 비교적 좋은 쿠르드 지역으로 주둔지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현재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의 자이툰 부대와 자연스럽게 임무 교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서정민 카이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