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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의 힘' 바닥 드러냈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신도시 공화국’. 정부가 잇따라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중에 돌고 있는 말 중 하나다. 뛰고 있는 집값을 잡기 위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게 신도시 건설 배경이다. 규제 일변의 부동산 정책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신도시 발표가 주변 땅값 상승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높다. 도대체 지금까지 건설된 신도시는 얼마나 될까? 신도시 건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잡을 유일한 방안일까. 이코노미스트가 신도시를 비롯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지난 10월 23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깜짝 발표’를 했다. 분당 규모의 신도시 한 곳을 수도권에 건설하는 등 대대적인 주택 공급확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추 장관은 코너에 몰렸다. 발표 이후 비웃기라도 하듯 수도권 인근 신도시 후보지에서 투기 열풍이 분 것. 이 때문에 추 장관의 거취 문제까지 도마에 올랐다. 예고도 없이 불쑥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추병직발(發) 투기붐’으로 확대 재생산돼 예상하지 못한 후폭풍에 맞닥뜨린 셈이다.

물론 추 장관이 신도시 건설 등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8·31 대책’에 이어 ‘3·30 대책’ 등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지만 시장은 비웃기라도 하듯 넘실댔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 안정’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그렇지만 행정수도 이전과 기업도시 건설 등 잇따라 대규모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땅값과 집값은 요동쳤다. 집값 안정과는 반대 방향의 정책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가격만 널뛰기를 한 셈이다.

실제로 각 부동산 가격 조사기관에 따르면 ‘헌법보다 고치기 힘들 것’이라는 지난해 8·31 대책 이후 올해 3·30 대책 발표 직전까지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6% 이상 상승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10.05%, 수도권 8.17%, 강남권 14.03%가 각각 올랐다. 또 3·30 대책 발표 이후 추석 전까지 아파트 가격은 서울 7.17%, 수도권 8.39%, 강남권 6.26% 등 전국적으로 6.84%가 상승했다.

여기에다 정부가 올 하반기 이후 아파트값이 내림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뜻하지 않게 서울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과 중소형 아파트값마저 오르면서 불안감이 고조됐다. 정부는 결국 더 이상 규제만으로는 집값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인천 검단 신도시 건설, 파주 신도시 확대, 내년 상반기 신도시 추가 발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의 신도시 발표에도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파주 신도시로부터 김포 신도시를 거쳐 검단 신도시로 이어지는 주거벨트가 형성됐지만 집값 상승의 진원지인 ‘경부축’에 몰리는 수요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수도권의 주택공급이 확대돼 집값 안정에 기여할 것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강남 수요를 끌어들이지 못해 효과적인 처방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시장의 이 같은 분위기를 자인이라도 하듯 정부는 11월 3일 관계부처 장관 간담회를 열고 ‘분양가 인하’와 ‘주택공급 확대’를 축으로 하는 추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고분양가 논란’에 시달려온 정부로서는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신도시 기반시설 구축 비용을 나랏돈으로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또 용적률을 상향조정하고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집값 뛸 때마다 ‘신도시 카드’

그렇지만 정부가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뒤 일주일 만에 또다시 부동산 대책을 내놓자 시장은 오히려 불신의 늪만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와 여당 지도부가 연이어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듯한 발언을 내뱉자 이번 대책 역시 약발 없이 내성만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입안의 실무 주역인 김수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은 11월 1일 “부동산 가격이 내리지 않고 오르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동산 정책은)실패했고, 실패한 주제에 할 말이 뭐가 있겠느냐고 한다면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며칠 후인 11월 3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며 “일부 정부 관계자가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당은 당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정책을 점검하고 있고, 이른 시일 안에 당정이 부동산 정책에 대해 점검하는 자리를 갖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무 주역들이 ‘부동산 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고 자인한 데 이어 여당 지도부 역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를 놓고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방향과 실제 부동산 정책이 엇박자로 흘러가면서 결국은 시장 혼란만 초래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자고나면 쏟아지는’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정책의 일관성이 있기는 한 것인가’하는 우려도 높다.

시장은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신도시 건설을 통한 공급 확대가 부동산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늘어나고 있다. 추 장관이 지난달 신도시 건설을 발표하면서 “집값이 안정될 때까지 개수에 제한 없이 협의가 끝나는 대로 신도시를 발표하겠다”고 한 대목도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때 그때 집값이 뛸 때마다 신도시 공급 계획을 내놓으면 오히려 정부가 ‘신도시 투기장’을 조성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사실 정부의 신도시 발표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신도시 건설은 개념이 다르기는 하지만 동양보다는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3000년 전 그리스 시대에는 무역 확대의 수단으로, 로마제국에서는 영토확장 및 제국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목적으로 신도시가 건설됐다.

주변 지역 땅값만 폭등

우리나라의 ‘신도시 건설’ 카드는 주로 수도권의 주택시장 안정과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사용됐다. 지난 1980년대 후반 정부는 서울 지역 내의 택지 개발이 용지 부족으로 불가능하게 되자 개발제한지역 외곽에 신도시 건설을 시작했다. 이때 건설된 ‘1기 신도시’가 바로 ‘산본·중동·평촌·일산·분당’ 등 5개 신도시였다.

수도권 1기 신도시 중 처음으로 삽을 뜬 산본 신도시는 4만2000호의 주택 건설을 목표로 1989년에서 1994년까지 건설이 이뤄졌다. 1기 신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큰 신도시는 분당이었다. 1989~1996년까지 조성된 분당 신도시는 강남권 주택 수요를 대체하기 위해 9만7600호의 주택 건설을 목표로 추진됐다.

1기 신도시가 건설됐지만 수도권의 주택난 해소는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또다시 ‘2기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한다. 2001년부터 조성된 2기 신도시는 ‘화성·판교·김포·파주·수원’ 등 5곳이다. 화성과 판교 신도시는 서울 강남지역의 주택 수요를, 김포와 파주 신도시는 서울 북쪽 지역의 대체 기능으로 구상됐다. 수원 신도시는 수도권 남부의 첨단·행정기능을 분담할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기 신도시에 이어 2기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수도권의 주택 부족과 가격 상승은 잡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2기 신도시 이외에도 현재 파주(2차)·양주·송파·동탄·광교·평택·김포 등 이른바 ‘3기 신도시’를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입주가 이뤄진 곳은 한 곳도 없다. 더군다나 이들 신도시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부정적 여론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가 내년 상반기에 새롭게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하면서 신도시 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는 곳의 집값마저 수직상승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내년에 발표될 신도시 후보지로 과천시·광주시·하남시·광명시·성남시 서울공항 주변 등 경기 남부지역을 꼽고 있다. 그렇지만 내년에 발표될 신도시 후보지가 4~5곳으로 압축되면서 이들 지역에 부동산 투기가 확산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과천 지역의 경우 아파트 가격이 최근 2~3주 동안 수천만원씩 오르고 매물을 거둬들이는 주인이 늘고 있다.

시중의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단기 처방으로 신도시 건설을 내놓고 있지만 오히려 집값과 땅값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공급확대를 통한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공급하기도 전에 집값이 들썩이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도 “2기 신도시까지만 해도 서울 주변에 10개 신도시가 포진해 있는데다 앞으로 건설될 신도시까지 고려하면 서울은 신도시에 ‘포위’돼 있는 셈”이라며 “도대체 얼마나 신도시를 더 지어야 집값이 잡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신도시의 역사

최초의 수도권 신도시는 ‘성남’

우리나라 신도시 효시는 조선시대의 화성(현재의 수원)으로 볼 수 있다. 화성 신도시는 2년 반 동안의 공사를 거쳐 1796년에 완성됐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모시기 위해 만들었다는 화성은 사실상 세계 최초의 신도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신도시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초기에는 공업단지의 조성에 따른 배후도시의 건설이 주목적이었고 그 다음은 수도 서울의 과밀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 추진됐다.

1960년대 말은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하는 시기였다. 국가 주도의 공업단지 조성에는 배후도시가 필요했고, 현재 울산과 구미의 신시가지는 그런 개념의 신도시였다. 포항·창원·여천·광양 등 이후 계속된 공업단지 조성은 자연스럽게 신도시 건설로 이어졌다. 공업단지 배후로서의 신도시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도시는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수도권 신도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1974년에 건설된 대덕 신도시는 연구단지 개념의 신도시였다. 이는 주거문제나 인구 과밀문제와 별도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신도시로 볼 수 있다. 현재 충남 공주·연기에 추진되고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역시 같은 개념의 신도시다. 과천도 행정기능의 분산을 위해 만들어진 신도시로 볼 수 있다.

수도권 신도시는 서울에 인구가 집중함에 따라 과밀 해소를 위해 인위적으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최초의 수도권 신도시는 성남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서울의 불법주택 철거 이전 정책의 산물인 성남은 계획적인 신도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1기 신도시는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의 결과물이었다. 국민소득이 급증하면서 주택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집값과 전세금이 급등했다.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방 빼!’라는 말이 유행어였을 정도다. 당시 집값 급등이 사회 문제로 비화되자 노태우 정권은 서둘러 신도시 건설을 발표하고 정력적으로 추진했다. 1989년에 시작돼 1991년 말 입주가 시작될 정도로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부작용도 꽤 컸다. 건설자재값이 폭등하고 바닷모래 시공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1기 신도시는 집값 안정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입주가 시작된 91년 말부터 입주가 끝난 96년까지 수도권 집값은 안정세를 유지했다.

2001년부터 정부가 잇따라 개발계획을 발표한 2기 신도시도 증가하는 수도권 인구를 분산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2기 신도시 다섯 곳 가운데 분양에 들어간 곳은 판교에 불과하며 입주한 곳은 아직 없다.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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