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든 싸모님!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일 오전 10시30분쯤 강남구 대치1동 동부센트레빌안 조경지에서 앞치마를 두른 부녀회 회원 10여명이 호미로 풀을 뽑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다 쪼그린 상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탓인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고된 일(?)속에서도 가끔씩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삭막한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 메아리쳤다. 기자가 "아파트를 관리해주는 직원들이 있는데 왜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묻자 "내가 사는 아파트를 아름답게 만들고 이웃과 정겨운 얘기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동부센트레빌 부녀회는 지난해 5월 발족된 새내기 부녀회다. 그러나 활동만큼은 여느 부녀회 못지 않게 활발하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마다 월례회를 개최해 '최고의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기본.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공원 등 조경지를 누비며 잡초를 뽑는 등 아파트 환경 미화도 이들의 몫이다.

어르신 공경에도 앞장서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노인회에 매달 일정금액을 지원해주기 이전인 지난 여름까지 짬을 내 아파트안 경로당을 찾아 떡국과 삼계탕 등 각종 음식을 해줬다. 또 전직 초등학교 교장인 신영호 전(前) 아파트 노인회장을 강사로 초빙해 초교생과 중1·2학년 재학중인 자녀들을 대상으로 겨울방학을 이용해 어린이 한문교실을 무료로 개설하기도 했다.

부녀회는 농촌살리기와 자원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10.11월 주민들과 함께 두차례에 걸쳐 경기도 양평소재 유기농 농촌 마을을 견학하고 이곳에서 재배한 쌀·김치·쇠고기·버섯 등 유기농 농산물을 공동 구입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경기도 강화와 충남 천안 소재 무공해 재배농가와도 연계,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해 아파트 주민에게 판매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지난 8월초에는 강원도 지역에 몰아친 폭우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하자 통·반장 협의회에 '이재민을 도와주자'고 제안해 동의를 얻어냈다.

입주민들도 성금 모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315만여원의 돈이 모이고 이불과 옷가지 등 생필품도 답지했다.

부녀회원들은 동사무소에서 지원해 준 트럭과 입주민 최정무씨가 지원해준 봉고차로 생필품을 가지고 강원도 인제군 한계2리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수마가 할퀴고 간 마을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처참했다.

부녀회 이부숙(53)부회장은 "15가구중 9가구가 폐허가 된 마을을 보는 순간 전쟁터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며 "사랑하는 가족과 보금자리를 졸지에 잃고 허탈해 하던 이재민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 씨는 또 "당초 가재도구 정리 등 자원봉사 활동도 하려고 했으나 포클레인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어 포기했다"며 "입주민이 낸 성금도 돈보다는 당장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기증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마을 이장의 요청에 따라 물건을 구입해 전달했다"고 말했다.

부녀회는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고아원을 찾아가 배드민턴·축구공·농구공·양말 등을 전달하고 원생들을 위해 손수 마련한 간식을 함께 먹으며 이웃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부녀회는 아파트 주민들의 재산권을 지키는데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해 강남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재산세 탄력세율 50% 인하를 주장하는 시위가 한창일때 입주민들을 규합해 강남구청과 구의회 청사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재산세 인하와 관련해 강남지역 아파트 부녀회 대표들이 연대해 발족한 강남발전모임에도 적극 참여하는가 하면 강남지역 발전을 위한 설명회가 열리는 곳마다 찾아가 아파트 숙원사업을 건의하는 억척스러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동부센트레빌의 부녀회는 3명의 공동대표를 두고 있다. 부녀회장이 1명일때 발생할 수 있는 독단을 예방하고 합리적으로 부녀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부녀회 조제음(55) 공동대표는 "남자들의 경우 대부분 직장이나 사업체를 가지고 있어 아파트내의 사소한 일까지 챙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아름답고 정겨운 아파트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부녀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우리 아파트의 경우 평소 주민들간의 유대가 좋아 부녀회가 활동하기에 한층 편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동부센트레빌은
= 2001년 재건축 승인을 받아 재건축에 착수, 지난해 1월 준공했다. 현재 1만5000여평의 대지에 25~29층짜리 고층아파트 건물 7개동이 건립돼 45·53·60평형 805가구 주민 2500여명이 살고 있다.

운동 및 위락 시설을 갖춘 양재천이 걸어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또 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 도곡역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바로 연결돼 있고 남부순환도로와 선릉로가 아파트 담장을 끼고 있을 정도로 대중 교통 접근성이 좋다. 국내 사교육의 1번지인 대치동 학원가와 인접해 있고 대도초교, 대청중, 숙명여중·고, 단대부중·고 등 강남지역 명문 학교가 학군으로 돼있는 등 교육 환경도 좋다.아파트 시설 및 경관도 뛰어나 지난해 제9회 살기좋은 아파트대회에서 최우수 아파트로, 2005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프리미엄 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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