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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에 활짝 북경의 『남과 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남북한은 역시 한 핏줄, 한민족이었다. 8년만에 종합스포츠무대인 제11회 아시아드에서 대규모 선수가 만나게 된 남북한은 전례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한 핏줄의 정을 따뜻하게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북한측의 선수·임원·기자들은 물론 응원단으로 온 참관객들까지 한국측 관계자들을 만나면 과거와는 달리 반색하며 먼저 손을 내밀고 등을 두드리며 안부를 묻는 등 동포애를 표시하고 있다.
북한측의 이 같은 미소공세에는 북경대회에서의 열세를 호도하려는 듯한 저의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측도 북한측의 이 같은 돌연한 적극공세를 우정으로 화답, 선수촌·훈련장·개막식장주변 등 북경곳곳에서는 오랜만에 배달민족의 훈훈한 정감이 넘치고 있다. 물론 남북한의 이 같은 변화는 중국· 대만의 끈끈한 관계와는 근본을 달리하지만 주목할만하고 고무적인 상황이라 하겠다. 남북한이 굳게 손잡은 여러 모습들을 살펴본다.
선수촌내의 남북한 선수단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의 없고 친숙한 모습을 보여 각국 선수단들로부터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남한측 숙소인 P·N동은 북한측숙소인 R동과는 거리가 불과 50m밖에 되지 않아 남북한선수의 접촉빈도는 매우 많은 편이며, 특히 식당에서는 항상 아침·저녁 만나게 된다.
특히 선수촌 식당에서 제공되고 있는 김치는 남북선수단에게 모두 최고의 인기품목으로, 미각을 통한 일체감 확인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종목의 경우는 연습장에서 만나 서로의 장·단점을 지적해주며 선전을 격려하고 있으며 체조선수단은 연습장에서 함께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우리의 소원』 등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남북선수들은 대화에서 전과는 달리 상호비방이나 자극적인 언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스스럼없이 어깨를 나란히 해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다.
모두 10대 중반인 북한 여자체조선수 7명은 수시로 선수촌 안 소공원 잔디밭에 나와 숨바꼭질 놀이인 「사람 뒤쫓기」를 하는 등 경기를 앞둔 긴장이나 중압감을 씻으려하다가 사진기자들의 촬영요청에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고 반갑게 응해 외부인 기피증이 심하던 종래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다.
지난 21일 수구경기가 펼쳐질 올림픽스포츠센터 내 수영장에서는 남북한 팀이 밀고 밀치는 숨가쁜 각축전을 펼쳤다. 비록 연습경기이긴 하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가득했다.『너희들 정말 잘하는구나. 몸조심들 하라구. 오히려 견제가 심할테니 말이야.』 『그래 고맙구나. 너희들도 잘해보라구.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짜임새가 덜한 것 같던데 힘있는 선수를 전방에 내세우는게 좋겠어. 수비보다 공격이 좀 둔한 것 같애.』
남북한 감독간의 우정어린 대화는 좀처럼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계속된다. 이처럼 남북한간의 동포애는 남북이 만나는 상봉의 무대마다 예외 없이 확인되고 있다. 첫상봉이 이뤄진 남자도로 사이클장에서 남북감독이 16년만에 만나 서로 격려한 것을 시작으로 테니스·체조·레슬링 등 각 종목 연습장마다 다정한 해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테니스 경기장에서는 남북감독의 즉석제의로 연습경기를 갖고 서로간의 장단점을 일일이 체크해주는 따뜻함을 보였고 체조장에서는 여자선수들끼리 한데 어울려 발목을 잡아주거나 손놀림·몸놀림을 교정해주는 등 정겨운 연습시간을 가졌다.
하키연습장에서는 북한팀 감독의 요청으로 초보단계인 북한선수들에게 기술을 설명해주고 코칭스태프에는 인조구장에서의 전술 문제를 조언해줬다. 박영조 감독은 또 북한 선수들이 인조잔디화가 아닌 테니스화 등 조깅화를 신고있는 것을 보고 예비로 가져온 신발 한 켤레를 선물, 동포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축구연습장에서 남북선수들은 지난달 다이너스티컵대회(북경) 때 만나 서로 친숙해진 탓인지 허물없이 안부를 묻고 전술·전략을 숙의하는 등 정겨운 분위기였다.
이밖에 조정·커누가 벌어지는 김해호 경기장이나 레슬링경기장, 농구경기장 등에서도 남북한 선수들간의 따뜻한 「하나됨」은 화해무드 속에 한층 달아오르고 있는 중이다.
한국기자들과 함께 북경 콘티넨틀 그랜드 호텔(오주대주점)에 투숙하고있는 북한기자들의 태도도 온건한 자세로 일관, 화합을 위한 끈질긴 노력을 보이고 있다.
18일 도착한 후 한동안 우리 보도진에 소극적으로 접근, 공동응원단구성 등에 대해 탐색전을 펴던 그들은 날이 갈수록 적극적 태도로 변해 우리 기자들의 접근을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찾아올 정도다.
이에대해 평소 남북한 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온 일본기자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며 『필경 평양상부에서 모종의 지시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하기도.
한편 북경시내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북한 응원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말을 거는 우리 기자들에게 단답형으로 대꾸하는데 능했다.
21일 북경시 번화상가인 왕후징(왕부정) 거리에 있는 유명약국 동인당에서 쇼핑 중이던 북한부부 한 쌍은 기자가 접근하자 『구경 나왔습네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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