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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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르면 이번 주 중 대기업의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가 정부안으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없애는 대신 대안을 마련 중인 공정거래위원회는 5일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를 유력한 대안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비(非)환상형 순환출자(사업지주회사제 등)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3일 성균관대 강연에서 환상형 순환출자를 거론하며 "적어도 재벌의 비합리적 지배구조, 비합리적 (소유) 연결구조 때문에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분만은 줄여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재 출총제 적용 기준인 자산 6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되 기존 분은 3~5년간 유예기간을 준 뒤 기간 내 해소하지 않으면 강제매각명령 또는 의결권 제한 등을 취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자산 6조원 이상 18개 그룹(출총제 적용 대상 14개) 중 환상형 순환출자가 있는 그룹은 삼성.현대자동차.SK.롯데.한화.두산.동부.현대.대림.한진.현대중공업 등 11곳이다. 그러나 최종 결정을 앞두고 공정위의 고민도 많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로) 결론이 나도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재계와 재벌개혁을 주장해온 시민단체 양쪽에서 미흡하다고 비판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 내에도 지나친 규제라는 목소리가 있는 데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기업투자를 억제하는 방안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안으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당정 협의 등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 지주회사 해야"=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를 둘러싼 본격적 논쟁을 앞두고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권 위원장의 비판적 발언도 잇따르고 있다. 권 위원장은 3일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 "재계에서는 경영권 방어 문제를 얘기하는데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등이 연결된 고리에서 어느 한 고리만 잡으면 전체를 잡을 수 있고, 그건 외국자본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이와 같이 비합리적인 지배구조 때문에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줄여 나가야 한다"며 "삼성이나 현대차 등이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등) 이런 시대적 요구에 결단을 내려 줬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그는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에버랜드 등 몇 개의 지주회사체제로 가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은 삼성이 어려운 것 같다. 현대차도 어렵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또 정통부.방송위.금감위.산자부 등에도 "관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을 제한한다"며 화살을 돌린 뒤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없애기 위해 (이들 부처와의 마찰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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