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이란 核중단에서 얻는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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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이란은 현재 가장 위험한 핵 개발국이다. 우리는 이 두 국가가 폭탄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핵분열 물질을 얻어내 실제로 무기를 만들기까지의 긴 과정 중 어디쯤에 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여하간 지난주 이란 정권이 핵시설에 대한 완전한 사찰을 허용하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는 유엔 사찰단을 쫓아내고, 벌써 가동할 수 있는 핵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허풍떨며 도발을 일삼는 북한과는 극적으로 대조된다.

이란이 왜 태도를 바꿨을까. 이란은 팔레비왕 시절부터 핵을 얻기로 결심해온 나라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천연가스와 석유가 풍부한 나라가 왜 독일에 핵 발전시설을 주문했겠는가. 그후 호메이니주의자들의 혁명이 있었고, 이라크와의 긴 전쟁(1980~88)이 있었다. 이에 따라 부셰르 지역의 원자로 건설은 중단됐고, 미국의 압력을 받은 독일도 부품과 기술 전수를 중단했다. 하지만 핵 거래에선 언제나 팔려는 측이 있게 마련이다. 러시아가 그랬고, 북한이 그랬다.

30년 묵은 이 이야기를 총괄하자면 이란은 최근 핵무기 개발의 가장 중요한 단계, 즉 핵분열 물질(U-235)을 포함한 천연 우라늄 광석에서 핵폭탄에 쓸 수 있는 우라늄을 추출하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부터 이란의 핵무기가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미국이 앞장서 온갖 종류의 위협을 제기하며 압박을 가해 왔다. 그리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수십년 동안 이란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견지해온 유럽이 갑자기 1백80도 돌아서 핵 문제를 거칠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이란으로서는 계산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유럽을 방패삼아 미국에 대항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란은 유럽 주요 3개국 외무장관의 방문을 받아들였다. 영국의 잭 스트로, 프랑스의 도미니크 드 빌팽, 독일의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의 방문에 이란은 놀라울 정도로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란은 핵시설에 대한 불시 사찰을 허용하고 농축 프로그램도 일단 중단키로 했으며 조약에 서명하기로 동의했다.

이 같은 이란의 변화는 동북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이 지금처럼 위험한 핵게임을 즐기는 것은 이 지역 주요 국가인 러시아.중국.일본.한국이 단결하지 않아서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기를 반기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북한에 직접 압력을 넣기보다 미국이 악역을 맡기 바란다.

이란의 경우엔 미국과 유럽이 결국 이란에 대항해 뭉쳤다는 점이 달랐다. 유럽의 세 외무장관들의 방문이 있었기에 이란 정부가 갑자기 한풀 꺾였던 것이다. 국제적인 씨름판에선 어떤 국가도 다른 모든 주요 권력들과 불리한 관계에 놓이는 상황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의 이야기에서 얻는 교훈은 미.중.러.한.일이 단결된 외교 전선을 형성하면, 김정일도 그의 위험한 핵 게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시아의 4개국은 미국과 함께 하는 것이 중립적이거나 무관심한 것보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내는 길이라는 점을 유럽에서 배울 수 있다.

한편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이 같은 합동 노력도 이란의 핵폭탄 개발 저지를 완전히 보장하진 못했다. 이란 정부가 우라늄 농축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유보'하는 데 동의했다는 점을 주목하라. 이는 결코 이란이 실제로 핵개발의 야심을 폐기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단지 핵개발을 연기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희소식이다. 미국과 유럽이 단결해 반대하자 이란은 핵 문제에 있어 훨씬 조심스러운 방식을 선택했다. 이란은 북한과 달리 공갈협박과 돌출 행동보다는 협상의 뜻을 보이고 있고, 세계는 귀중한 시간을 벌게 됐다. 무엇보다 이란의 경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큰 권력들이 뭉치면 깡패 국가들은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이웃과 전세계에 더 큰 선을 가져올 것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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