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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눈이 시린 설봉|월광 은은한 호수|돌아서지 않는 발길|스위스 루체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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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스위스는 아름다운 나라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거나 살고 싶은 곳을 손꼽으라면 스위스를 선택하는 것을 보아도 세계인의 공원이라 할 만하다.
장엄하면서도 변화가 넘치는 산, 로맨틱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호수, 아기자기한 꽃 등…. 4만 평방km 약간 넘는 작은 국가지만 이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난 나라도 없다.
스위스의 동서남북은 각각 오스트리아·프랑스·이탈리아·독일로 둘러싸여 있어 직접 바다에 이를 수는 없다.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한 내륙국가인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스위스는 여러모로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국토는 물론이고 기후나 문화·언어도 다양하다. 사용 언어가 다른 것은 처음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사용했던 언어를 그대로 쓰기 때문인데 공식언어만도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로마니시어 등 네 가지나 된다. 그러다 보니 나라이름도 언어별로 발음이나 철자표기가 서로 다르다.
불과 6백50만의 인구인데도 그처럼 통일성이 없지만 그네들의 애국심과 단결심은 오히려 세계적이다.

<국기게양 일상화>
17세기초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벌일 때를 무대로 한 실러의 희곡에 나오는 『윌리엄 텔』이야기가 애국심의 상징처럼 전해진다. 자기아들의 머리 위에 얹은 사과를 활로 쏘는 그 얘기의 주인공이 윌리엄 텔 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국기게양이 일상 생활화되어 있어 음식점 같은 곳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 집에서도 늘 국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그네들은 매우 독특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오고 있다. 국방·외교·우편·통화관리 등과 같은 꼭 필요한 사항 외에는 모두「칸톤」이라고 불리는 20여 개의 지방정부에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유권자 10만 명 이상이 서명하면 헌법 개정을 발의할 수 있고 연방정부는 또한 반대법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어 선택적 국민투표가 가능한 제도도 있다.
이러한 기본권들과 지방자치제가 그 많은 문화적 차이들을 극복하고 단일국가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틀이 되고 있다.
스위스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산업자원이다.
자연경관은 여행객을 매료시키지만 농경지나 부존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가공이나 서비스산업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하나를 만들더라도 품질이 우수하다. 시계·칼·치즈·초컬릿 같은 제품이 그것이다.

<다리서 그림 감상>
스위스의 여러 지역들 중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곳은 국제기관의 사무소가 많아 유명한 제네바, 레만 호, 그리고 스위스 최대의 도시로 대한항공이 취항하고 있는 취리히 등이다. 그러나 스위스 연방정부의 수도가 베른이라고 아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스위스 여행에 있어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지역 중 하나가 루체른이다.
알프스의 눈 덮인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이 호반의 도시는 동북쪽의 리기 및 비르겐스토크 산과 남쪽의 필라투스 산 관광의 거점이다.
취리히에서 관광버스나 열차로 약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 정거장 앞에 독특한 지붕을 얹은 다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것이 루체른의 얼굴인 카펠 교다.
목조로 된 이 다리에는 번호가 붙어 있는 1백여 점의 그림이 걸려 있는데, 순서대로 보면 제주도의 목석 원에 있는 전시품처럼 일련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어 흥미를 돋운다. 충분한 어학실력과 인내심이 있어야 감상이 가능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스쳐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이 로이스 강. 주변에 중세 풍의 저택들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이 위풍당당한 집채들은「무제크」성벽과 연결되는데 옛날에 성곽을 지켰던 9개의 망루에 올라 볼 수 있다. 이 일대의 관광은 산책로를 따라 리도의 공원까지 걸어 보는 것이 좋다.
루체른 시내에는 찾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들러 볼 전시장이 두 곳 있는데, 피카소의 후기작품을 모아 놓은 피카소 전시관과 교통박물관이다.

<리프트 타면 아 찔>
아름다운 공원처럼 꾸며 놓은 교통박물관에는 알프스 봉우리를 오를 때 타 보게 되는 톱니바퀴형태의 등산열차, 초기의 비행기구·기차·수레 등 교통수단 발달모습을 전시해 놓고 있다. 또 스위스의 멋진 풍경을 3백60도에서 보여주는 30분 짜리 영화를 볼 수 있다. 일 정이 촉박한 여행객은 이「스위스라마」를 보는 것으로 스위스를 다 봤다고 설쳐대기도 한다.
루체른 여행의 압권은 필라투스 산에 올라가는 것.
바퀴가 톱니처럼 된「치차」를 타고 오르거나 1인용 케이블카 같은 리프트를 타는 방법이 있는데, 오르고 내릴 때 바꿔 타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린이 놀이기구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면 리프트는 사양하는 것이 좋다.
허공에 매달린 케이블에 걸쳐 있는 의자에 앉아 발 밑으로 펼쳐지는 계곡과 산등성이를 바라보게 되는 리프트를 타면 꼬리뼈마저 움츠러들 각오를 해야 한다. 치 차의 경우도 45도 이상의 경사를 올라갈 때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열차여행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만큼 안전한 등산용 운송수단을 만들어 놓은 스위스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그 멋진 경관을 만들어 놓은 신에 대한 감사 같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여행이 된다.

<따뜻한 옷 준비를>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필라투스의 정상에 오르면 코피나 간단한 음료를 파는 레스토랑도 있지만,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을 만큼 천하를 내려다보는 듯한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그것은 「아! 이 광대한 지구의 한 꼭대기에 서 있는 나의 존재는 얼마나 티끌 만한 것인가」하는 깨달음이다. 맑은 날에는 알프스의 또 다른 여러 봉우리들을 마주볼 수도 있다.
▲융프라우=루체른에서 취리히까지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인터라켄이 거점도시다. 톱니바퀴 열차를 이용하여 오를 수 있는데, 윈드 재킷이나 스웨터 같은 따뜻한 옷을 꼭 지참해야 소중한 기회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다. 평화스럽고 푸른 지대를 지나서 꼭대기에 다다르면 온통 세상이 눈으로 덮여 하얗게만 보인다.
▲베른=중세 유럽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라서 도대체 여기가 수도인가 할만큼 우리네 서울과는 전혀 반대의 인상을 준다.「무츠」라는 이름의 곰이 이 도시의 상징이라 「곰의 도시」라고 불린다. 도처에 곰의 그림과 동상들이 서 있다. 다양한 건축양식과 예술품 감상만으로도 여행의 보람을 맛볼 수 있다.
백 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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