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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상록수」배경 농민문학의 본 고장|안양 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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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 도심에서 버스나 전철로 1시간도 채 떨어지지 않은 안양. 6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포도밭으로 유명한 서울 근교 전원소읍이었다.
『안양은 서울 바로 아래라서/서울로 가려다 지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안양은 서울 가까운 곳이라서/서울을 피해 나온/덜 약은 사람들도 내려와 산다./나처럼 고향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안양에도 적어졌다./겁이 많은 장남들만 남아서/아버지의 유언을 기다리며/조상의 무덤이나 쓰다듬고 있다.』(김대규의「안양」중)
1973년 시로 승격, 급격히 공업화되면서 전통 농촌사회의 붕괴과정을 거쳤고 거기다 수도권 인구가 몰려들면서 서울로 진입 못한, 서울서 떨어져 나간 주변 부 삶이란 의식까지 겹친 문화적 혼돈상태에서 안양은 서울에 종속되지 않은 고유의 문화 전통에 바탕을 두고 전원과 도시,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새로운 문화창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안양문단에서는 그들이 낳은 근대문인으로 소설가 심훈과 이무영을 꼽는다. 이곳서 출생했으나 작품활동은 여기서 하지 않은 심훈(1901∼1936)은 그러나 그의 대표작『상록수』의 배경을 이 고장으로 삼아 안양 근대문학의 효시로 떠오른다.
또 이 고장 출신은 아니나 1939년부터 1950년까지 이곳에 머물며 자신의 최초 농촌소설인『제1과 제1장』을 비롯, 많은 대표적 작품을 남긴 이무영(1908∼1960)도 이 고장 문인으로 떠받들어진다. 심훈·이무영으로부터의 농촌소설은 정동수씨에게 이어지며 이 지역이 농민문학의 한 산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1944년 이곳에서 태어난 정씨는 이곳에 머물며『고향기행』연작 등을 통해 이 고장을 배경으로 한 농민문학을 깊이 있게 천착해 들어가고 있다.
해방 후 안양에서 최초로 결성된 동인은「안양문학 동인 회」. 직장관계로 안양에 내려와 있던 박두진씨와 정귀영씨 등 안양지역 문인들이 1947년「알차고 탐스런 청포도송이 같은 안양문학」을 가꾸기 위해 결성한 안양문학 동인 회는 동인지『청포도』를 내며 활동하다 6·25를 맞아 뿔뿔이 헤어졌다.
6·25에 의해 청포도 밭과 함께 초토화돼 버린 안양문학이 재건된 것은 1958년「시와 시론 동인 회」에 의해서다. 김창직·노영수·성기조·정귀영·조구마씨 등에 의해 주도된 시와 시론 동인 회는『현금 문단의 현실적인 부조리와 서구적인 모방·개작 등의 불미스런 고민에서 벗어나 진정 새로운 시단의 기가 되기로 한다』며 동인지『시와 시론』을 펴내며 안양 시단을 이끌었다.
72년 제26집까지 내다 서울로 옮겨 문예지가 된『시라 시론』은 안양시절 작품에서의 참신한 실험정신과 제도화된 중앙문단에 대한 공박으로 중앙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었다.
안양문화원이 개최하고 있는 관악백일장 시 부문 입상자들이「거창한 슬로건도, 집단적인 이슈나 목적의식도 표방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중시」를 내세우며 1972년 결성한「낙엽문학 동인 회」는 현재 동인8명이 동인지 28집을 내며 동인명칭을「시 울림」으로 바꿨다.
『변경의 꽃으로만 살수는 없다』며 기형도·김우식·박인옥·유재복·윤봉기·이재학·홍순창씨 등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모여 1979년 결성한「수리시 동인회」는 현재 회원 7명이 동인지를 7집까지 내며 활동하고 있다. 현장의 아픔과 현실의 어둠을 파헤치려는 수리시 동인회의 현실참여 의지는 동인 회 운영을 동인지 발간보다 정기적인 시 낭송 회를 통한 문학의 현장성과 독자와의 직접적인 접촉 쪽으로 가져가고 있다.
산업체 근로자로 구성된「근로문학 동인 회」와 함께 시에서 개최하는 여성글짓기대회 입상자들로 1977년 구성된「여성 문우 회」도 안양의 특성을 나타내는 문학단체. 현재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여성회원 44명으로 매년 동인지『아낙』을 펴내며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기법이나 내용에 있어서 시조의 현대성을 내세우며 1986년「잉벌 시조 동인 회」가 구성돼 현재 동인 5명이 매월 합평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 동인지는 못 냈다. 또 올 여름 이 지역 젊은 문인 5명이 시 전문무크『기호문학』을 창간,『앞으로 향토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룩하기 위해 종합문예지로 키워 나가겠다』고 의욕에 차 있다.
한편 1970년 창립된 한국문인협회 안양지부(지부장 김대규)는 금년 들어서야 기관지『안양문학』창간호를 내며 안양문학 부흥을 위한 새로운 각오에 차 있다. 현재 전 장르를 망라, 회원 50명으로 구성된 문협 안양지부는 그동안 백일장·시화전·문학강연회 등에 그쳤던 활동을 확대해 창작교실개실·안양문학상제정 등 향토문예진흥을 위한 사업을 걸쳐 나갈 예정이다.
특히 안양이 서울의 위성도시로서의 단순한 베드타운으로의 전락을 막고「아파트 문화의 향토화」를 위해 주부들을 문학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활동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위성 도시로서의 종속이냐, 혹은 고유의 생활권을 갖느냐는 것은 결국 향토문화 의식이 있고 없음이 가름하기 때문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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