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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피해 줄인 관­군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뚝섬 제방유실 막은 이기수씨/물새는 것 미리 발견 위기 모면
24시간 유수펌프장을 지키는 서울 성동구청 하수과 말단직원 이기수씨(35)의 「물지기」 사명감이 한강 범람의 위기를 막았다.
토사질로 돼 있는 뚝섬제방으로 중랑천 물이 스며 붕괴조짐을 보이는 것을 조금만 늦게 발견했거나 『괜찮거니』 하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성동 일대 5만여가구는 완전 침수를 면치 못했을 것. 12일 오전 8시30분.
지난 밤을 꼬박 새우며 펌프를 가동,고인물을 중랑천으로 퍼낸 이씨는 방금전 TV에서 본 한강 범람소식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순찰에 나섰다.
『별일 없겠구나』하고 생각하며 제방길 순찰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순간 펌프장쪽 물 표면 위에 떠있는 낯선 물체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흙거품 몇방울이었다.
잡목과 수풀을 헤쳐 물이 새는 곳을 발견,발로 몇번 밟자 직경2㎝가량의 구멍이 주위에 생기며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방에서 물이 새고 있어요. 위험합니다.』
경비전화로 성동구청 재해대책본부에 보고했다. 오전 8시50분.
동료직원 2명과 함께 삽등을 들고 현장에 가보니 어느새 직경1m의 구멍에서 누런 흙탕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높이 10mㆍ폭20m의 모래제방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성동구청은 인근 동사무소의 스피커를 통해 주민들에게 대피안내방송을 했고 구청의 보고를 받은 서울시 대책본부가 발칵 뒤집혔다.
제방이 붕괴될 경우에 대한 예측이 시작됐다.
결과는 인근 성수1ㆍ2가 1ㆍ2ㆍ3동,화양동 일대가 모두 저지대인 탓으로 5만여가구의 완전 침수가 불가피했다. 오전 10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복구작업은 덤프트럭 20대,페이로더 1대,인력 5백명 등이 동원돼 직경 2m로 커진 구멍과 제방 반대쪽에 50여t의 흙을 퍼부은 끝에 오후 3시쯤 완전복구가 이뤄졌다.
『발견이 30분만 늦었어도,또 보고가 제때 되지 않았다면 제방은 이미 붕괴됐을 겁니다.』
이종인 성동구청 건설국장의 설명.
이씨는 관리실 2층에서 2살,4살의 남매등 네식구가 생활하고 있다.
공고 졸업후 81년 성동구청 하수과에 첫 발령을 받은 이씨는 9년간 펌프장 문지기 노릇만 해왔다.<이효준기자>
◎한강둑 붕괴 첫 발견/김상진중령/범람 한시간전에 긴급 대피령
고양군 일대 한강범람으로 수만명의 이재민이 났는데도 사망ㆍ실종자가 상상외로 적은 것은 둑이 붕괴되기 바로 직전인 12일 오전 2시30분쯤 순찰을 돌던 육군 1719부대 장병들이 둑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곧바로 주민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김재호상병(21)등 9명은 12일 0시부터 대대장인 김상진중령과 함께 둑의 붕괴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횃불을 들고 둑의 이상여부를 확인해 가던 중 오전 2시30분쯤 행주대교 남쪽 6백m 지점에서부터 하류쪽으로 3백m 구간에 손가락 만한 구멍 13개가 뚫려 물이 새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단사령부와 고양군청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지원과 경계경보를요청하는 사이 30여분 만에 손가락만 하던 구멍은 직경 1m 크기로 커졌고 1시간이 채 못돼 둑 10여m가 무너져 나가면서 물살이 밀려들어왔습니다.』
둑이 터진 지 1시간여 만인 오전 5시쯤 물살이 인근 3∼4개 마을을 완전히 침수시켰던 점으로 미뤄볼 때 이들의 경보가 없었다면 엄청난 피해가 났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김중령등 1719부대 장병들은 화전읍에서 능곡사이의 창릉천 2㎞ 구간에서도 둑이 넘치는 바람에 11일 오후 2시부터 10시30분까지 쉬지 않고 물막이 공사를 한 뒤 피곤을 무릅쓰고 곧바로 행주대교 아래로 달려온 상태였다.
구호작업에서도 병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특히 돋보였다.
12일 하룻동안 군헬기 21대가 오전 6시부터 해질 때까지 고립지역에서 1백32명의 주민을 구출했고 60여척의 보트는 3백25명을 안전지대로 실어날랐다.
구조작업에 나선 3천여명의 병사들은 거센 물살이 밀려오는 데도 몸에 로프를 감고 제방과 침수가옥 지붕으로 올라가 주민들을 구해냈다. 군의 이같은 노력은 바로 민군 합심이면 모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산 본보기로 남을 만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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