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사라지는' 이순신 동상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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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의 중심 세종로에서 우리는 자랑스럽고 당당한 느낌이 듭니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인물의 조각상은 도시의 랜드마크(Landmark.상징물)로 시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때로는 국민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야간에 100m 이상 떨어져 바라보면 낮에 보이던 그 장엄한 모습은 어둠에 묻힙니다. 가까이 가면 보이기는 하지만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밤이 되면 도시는 어둠에 잠기고, 다양한 종류와 방식으로 비추는 인공의 빛은 도시 이미지를 바꾸어 갑니다. 빛의 연출에 의해 사물은 화려하게도 되지만 때로는 어색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공포영화에서 동일 인물이 조명 효과에 따라 미인에서 귀신으로 바뀌는 것처럼 인물 조각상의 경우도 빛의 유형.강도.각도에 따라 인상이 크게 변합니다. 조각물의 구조와 얼굴 표정의 해석을 통해 투광 방식을 결정하고 강조점을 설정해야만 빛과 그림자의 자연스러운 대비가 이뤄지면서 풍부한 표정과 모습이 구현됩니다. 집중력을 위해서는 주변 경관과의 휘도비(밝기 차이)도 정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바로 밑에 설치한 상향 조명에만 의존해 기단부만 환하게 비출 뿐 정작 인물은 조명 범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조각상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지향성 광원이 설치돼야 하고, 조명의 강조점도 인물을 향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광화문 거리의 시각적.심리적 초점입니다. 효과적인 조명을 통해 낮에 보는 장군의 모습보다 밤에 더 생동감이 드러나게 해야 하고, 주목성을 더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동상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큰 길 중앙에 줄지어 서 있는 가로수는 동상과 더불어 광화문 거리의 장소성을 형성하는 중심축입니다. 따라서 가로수를 비추는 칙칙하고 음산한 빛깔의 상향 조명도 깨끗하고 따뜻한 빛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야간 경관 조명이 시민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로 크기 때문에 도시의 모든 조형물을 비추는 조명은 전문적으로 검토돼야 합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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