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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비행장 주변은 가축도 못 키운다"-소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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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말로만 들었던 비행기 소음이 이토록 사람이 못살 정도로 시끄러울 줄 몰랐어요.
지난 3월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방 한칸 딸린 가게를 얻어 이사 온 박한선씨(39)는 전세가 싸 왔다가 후회 막급이다.
매일 오전6시부터 오후11시까지 5분이 멀다하고 머리위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 소음 때문이다.
귀가 깨지는 소음으로 다섯살난 쌍둥이 아들이 자주 놀라고 오줌소태에 걸리는가 하면 겁이 나 밖에 나가 놀러하지 않는다. 부인은 소화불량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고, 박씨는 소음공포증에 시달린다.
부천시 고강동은 김포공항 신활주로로부터 2㎞떨어진 곳으로 김포공항을 통과하거나이·착륙하는 비행기는 하루평균 2백90회. 대체로 80∼90데시벨(db)의 소음을 내뿜는다.

<집 값도 떨어져>
이 수치는 청력손실 초기증상을 부르며 심한 경우 일시적 청력손실 현상이 오는 1백db이상 배출한다. 지금은 취항이 금지됐지만 보잉707기 한대가 내는 소음량은 자동차 10만대가 배출하는 소음과 맞먹는다.
주민들은 이 때문에 요즘 같은 더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해 고역을 겪고있다. 또 주민의26%가 소음성 난청에 걸려있음이 서울대 조사팀에 의해 88년10월 밝혀졌고, 웬만한 차음노력은 헛수고다.
구 활주로와 가장 가까운 서울 신월3동 Y독서실 주인 이모씨(41)는 지난5월 개업때 16개 창문마다 5cm두께의 스티로폴로 15㎝의 공기층 방음벽을 만들어 밀폐했으나 소용없었다.
「신월3동 항공기 소음공해해소 대책위원회」유기옥 회장은 『이러니 사람 살 곳이 아니다. 거져 줘도 못살겠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며 집 값인들 온전하겠느냐고 호소한다.
이 같은 사정은 전국의 80개 민·군용 비행장 주변지역도 마찬가지.
시내와 가까운 대구·제주공항과 제트전투기가, 그것도 2∼4대씩 한꺼번에 자주 이륙해 훈련비행을 하는 경기도 화성군 매향1, 2, 3이나 충북 청원군 북일면 일대 주민들의 소음피해는 심각하다.
지난해 4월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가 매향리 주민 1백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5·3%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25db 이상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소음성 난청환자였다.
북일면 외남리 이장 조항래씨는 『비행장 건설당시 하필이면 이곳에 집단 이주토록 했는지 원망스럽다』며 『닭의 산란율, 소·돼지의 수태율과 착유량이 20∼30% 줄었다』고 했다.
서울 신천동 H아파트는 올림픽공원·석촌호수·한강시민공원·지하철역·시외버스 정류장 등과 가까워 주거환경이 으뜸으로 손꼽힌다.

<거의 기준치 초과>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은 2∼5분마다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전동차소음에 질려 하루20시간이 괴롭다.
철도소음도 심각하지만 소음공해의 주범은 자동차. 교통량이 연 20%나 증가하는데다 도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소음이 있게 마련이어서 국지성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이태원동의 경우 일반주거 전용지역의 낮 소음도는 61db, 밤 소음도는 52db 수준으로환경기준치를 각각 11∼12db을 초과하고 있다.
또 준 주거지역(기준치=낮65, 밤 55db)서울 종암동의 소음도는 낮 81db,밤 76db로 최근 환경처의 조사결과 나타나 상업지역보다 훨씬 높았다.
60db일땐 맥박이 증가하고 70db이면 말초혈관이 수축반응을 나타내며 80db에 이를 경우 청력손실 초기증상이 시작된다.
지난1월 서울보건환경 연구원이 서울시내 상업지역 25곳을 대상으로 측정한 평균 소음도는 76·8db로 나타났다. 특히 도심권에선 76db을 웃돌아 기준치(65db)를 크게 넘어섰다.

<소음>
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 등 지방 주요도시의 지난해 평균 소음도도 72∼74db로 측정돼 환경기준치를 웃돌기는 마찬가지여서 소음공해로 시달리고 있다.
도로교통소음의 방지책으로는 방음벽 설치가 손꼽히고 있으나 비용문제에다 고속도로 등을 제외하면 설치가 불가능한 곳이 많고 미관을 해쳐 한계가 있다. 또 설치했다 하더라도 설치기준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세워져 소음을 줄이는 효과가 미흡한 경우가 태반이다.
서울 남부순환도로 및 서부간선도로변의 구일국민학교는 방음벽과 교실과의 거리가 맞붙어 1층 높이의 방음벽으로는 2, 3층 교실의 소음저감엔 전혀 무방비한 실정이다.
국립환경연구원의 지난해 경부·중부·호남·남부고속도로변 방음벽이 설치된 30개 마을과 학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방음효과에 대해 주민 3·8%, 교직원 26· 2%만이『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소음방지 시설의 졸속공사로 서울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단지는 더 시끄러워졌다. 4단지와 7단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인고속도로 8백m 구간에 6m높이의 방음벽이 설치돼있다.
그러나 고속도로 양쪽벽면에 타일을 붙여놓아 음이 반사와 공명현상을 일으켜 인근 4, 7단지 5, 6층 이상 고층에 사는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있다.
건설소음도 대단해 공사장에서는 주민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킨다. 올들어 분양 착공한 충북청주시내 4개 아파트 공사현장은 모두가 민원을 야기했다. 3개 건설회사는 주민편의시설 제공 등으로 수습됐으나 암반 굴착공사를 하던 S주택은 인근 모충동 주공아파트 4개동 l백60가구 주민들의 반발을사 6월2일부터 기초공사조차 진행시키지 못하고있다.
소음관련 민원은 해마다 늘어나 88년에는 1천36건으로 환경관련 민원 중 38%를 차지했다.
진동은 물적 피해가 뒤따라 2중 피해를 보게한다. 원석 채광장에서는 대규모 발파작업으로 인근 주택들이 폭음 진동 때문에 벽에 금이 가고 방이 꺼지는 등의 사례가 전국적으로 적지 않다.
1호선 지하철의 건물지하 통과를 둘러싸고 부산시 서대신동의 진동피해는 창문이 마구 흔들리는 등 자못 공포에 가깝다는 것이 주민들의 호소다.

<환경민원의 38%>
서울2호선 지하철도 통과지점 부근의 지반 및 구조물에 대한 종합적인 진동영향 평가가 없이 건설됐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라 86년 한양대 교수팀의 「진동레벨평가」결과 주변건물의 진동피해는 앞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것으로 지적됐으나 집단민원이 우려돼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프랑스나 일본에서는 이 같은 진동피해를 줄이기 위해 쇠바퀴 대신 타이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소음진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환경공해에 있어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난청·수면방해·불쾌감 등 정서장애는 오래된 피해다.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를 자극, 식욕 및 소화력을 떨어뜨리고 심할 경우(80db이삼 장시간노출)고혈압·뇌일혈·위궤양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이러한 소음피해는 연평균 20% 급증하는 교통량의 증가에 따라 날로 늘어나고 있으나 각종 소음에 대한 규제 및 저감책은 실제 수동적인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그 이유는 ▲사실상 근원적 방지 내지 저감이 불가능한 면이 많고 ▲대책마련에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며 ▲법적 규제가 미흡하다는 점으로 크게 요약된다.
83년 소음환경기준이 마련된 뒤 방음벽 설치는 지금까지 60군데에 총 연장 60km에 불과하다. km당 건설비가 2억5천만∼3억5천만원이나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 환경처 관계자의 말이다. 이에 서울의 경우소음피해가 큰 92개 초·중·고교 중 9개교만이 금년 중 방음벽이 설치될 뿐이다.

<규제법 유명무실>
비행기소음피해 해소책은 까마득하다. 교통부는 지난해 전국 8개 민간비행장 주변의 소음피해보상 대상가구를 11만6천2백60가구(45만5천여명)로 확정, 보상을 위해 특례법마련을 추진했으나 예산이 2조원 가량 드는데다 군용비행장 주변 주민들까지 보상요구가 확산될 것이 우려돼 흐지부지되고 있다.
보상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관계법령의 미비. 항공기소음 피해지역 내에 지금도 계속되는 아파트 등의 신축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 환경보전법 상으로는 광범한 일반적 규제 등에- 효율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서울시청의 한 관계자는 소음과 관련, 「주택건설 기준에 관한 규칙」이 있으나 실제로 유명무실하다고 털어놓았다.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내 경인국교 등 4개 학교의 일부 교실이 소음이 심한 4차선 도로와 겨우 9∼12m정도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음피해에 그대로 노출되고 진동피해가 방치된 현실에서 주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소음진동피해에 깊게 내몰리고 있다.
『무엇보다 능동적 소음제어기법을 개발하는 등 소음원을 찾아 근원적 해결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오재응 교수(한양대 산업과학연구소)는 이의 대안으로 자동차배기 시스팀 개량·반대파발사 등 기술의 실용화를 제시했다.
환경처의 한 관계자는 소음진동 규제법이 환경보전법에서 분리, 제정되면 음원별(음원별)대책수립이 보다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글 탁경명 기자·사진 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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