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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린 싱글맘 싱글대디 ① 둘뿐이지만 힘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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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림책 ‘엄마는 나 없을 때 뭘 할까?’(강산 그림)의 한 장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부부가 힘을 합쳐 용을 써도 때로는 버거운 일이다. 하물며 혼자 두 몫을 해야 하는 싱글맘.싱글대디에겐 오죽하랴. 우리 사회에서도 싱글맘과 싱글대디가 늘어나고 있다. 한 부모 가정이 이미 120만 가구를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도 한 부모 가정은 편견이나 동정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래서 싱글맘 박소원(44.더브리지 대표)씨와 싱글대디 정일호(38.프리랜서 사진작가)씨가 그들의 속내를 풀어놓기로 했다. 한 부모 가정도 꿋꿋하고 희망차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또 '위기의 부부'에겐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다독이며 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다. 결혼 2년 만에 이혼한 박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4년 전 이혼한 정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을 키우고 있다.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 싱글맘 박소원씨

아빠랑 노는 또래 바라보기에
"엄마가 비행기 태워 줄까?"
"정말 할 수 있어? 신난다"

엄마가 태워주는 비행기. 모자가 함께 찍은 몇 안 되는 사진이다.

"엄마, 학교에서 어릴 적 사진 가져오래."

아들 녀석이 사진첩을 꺼내들었다. 함께 옛날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아들은 사진 삼매경에 빠졌다. "귀엽다, 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아들이 불쑥 묻는다. "근데, 그때 엄마는 어디 있었어." 대부분의 사진이 아이 혼자거나, 할머니와 함께거나, 사촌들과 어울리는 것밖에 없으니 나온 질문이다.

"엄마 안 보여? 엄만, 그때 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지."

그래, 나는 언제나 네 앞에 있었지. 너를 들여다보며, 너를 찍으며…. 그 흔적들이 네 마음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섭섭함은 아랑곳없이 아들은 네 살 즈음 찍은 사진 한 장을 골라 책가방에 넣었다. 며칠 뒤 학교 교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사진전을 들여다보니 우리 아들의 사진이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모든 사진은 엄마 아빠가 함께 출연한 일종의 가족사진들. 가슴이 싸~아하다.

아빠의 부재는 사진 속만의 일이 아닐 테지. 언젠가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던 시절, 늘 지하철을 한번 타보는 게 소원이라는 아들을 위해 지하철 여행길에 올랐다. 을지로역에 내려 명동성당까지 걸어가면서 아이는 매우 들떠 있었다. 명동성당 뒷마당에서 비둘기 먹이도 나눠주고 사진도 찍었다. 광장에는 마침 아들 또래의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뛰놀고 있었다. 아빠는 힘 좋게 아이를 안아 올려 비행기를 태워준다.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광장에 흩어졌다.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아들은 나를 한번 올려보다가 이내 포기하는 얼굴이다.

"너도 비행기 태워줄까?" "할 수 있어?" "그럼~."

나는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빙그르르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돌렸다. 아직 이 정도야 문제없지. 그렇게 모자가 알차게 놀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그 집 아빠가 말을 건넨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아… 네."

그래서 아이를 번쩍 들어올린 힘 좋은 싱글맘과 아이의 사진이 어렵게 탄생했다. 학교 사진전 이후 다시 사진첩을 들춰보며 모처럼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내고는 생각이 복잡했다.

이젠, 너를 들어올려 비행기 태워주는 일은 불가능해. 너도 부쩍 자랐으니까. 하지만 네 이야기를 들어주고, 네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너와 기쁘게 생활하는 일은 엄마도 잘할 수 있는데…. 늘 이런 생각이지만 가끔 다른 친구들의 아빠에게 향하는 네 부러운 눈길은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도 파이팅!

박소원 <sohone@korea.com>

◆ 싱글대디 정일호씨

다친 아이 상처에 내 살 찢긴 듯
'괜찮다' 확인 뒤 억눌렸던 눈물 …
"우리 딸 더 아프게 안할게"

아빠와 함께 장을 보는 딸. 이젠 익숙해졌다. 최승식 기자

"아버님, 오늘은 안아보셔도 됩니다."

딸아이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8개월이 조금 넘어 세상으로 나왔고, 3주간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다.

태어나고 보름이 지나서야 1.7㎏의 딸아이를 안아봤다. 입에 물려있던 호스, 가슴팍에 꽂혀 있던 호스 등 모든 장치가 제거되고 스스로 숨을 쉬게 되고서였다. 너무 많은 호스가 몸에 꽂혀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 팔다리를 하나씩 끊고서라도 그것들을 없앨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갖기도 했었다.

"아빠, 아퍼 아퍼 아퍼. 엉엉엉." 딸아이와 둘이 생활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철문을 닫는데 딸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철문에 손이 낀 것이다. 집안에 들어서면서 딸아이가 하필 그곳에 손을 짚었고 난 그것도 모르고 문을 닫은 것이다. 내 온 신경을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어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래, 많이 아프지. 살살 움직여봐." 내 온몸은 두근두근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고 차츰 아이의 울음도 잦아들었다. 순간 그동안 억눌러 왔던 내 속에 뜨거운 뭔가가 푹하고 올라왔다.

"아빠, 아빠 울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니야, 울기는…. 눈에 뭐가 들어갔나?"

딸에게 엄마가 없어지고서 내 몸에 배인 슬픔은 어쩔 수 없었지만 딸아이에게 눈물까지 보여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일년하고 몇 개월이 더 지나고서 딸아이는 슬그머니 그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빠 그때 울었지?" "응, 그때 아빠 울었어. 신우가 놀랄까봐 안 울었다고 했어." 그리고 생각했다. '아빤 우리 신우 또 아프게 하는 게 너무 미안하거든'.

나는 지금도 햇살이 눈부시게 따뜻하던 날, 딸아이가 창밖을 물끄러미 보면서 했던 혼잣말을 기억한다. "해님은 내가 엄마랑 살지 못하는 것을 알까?" 먹먹한 가슴으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랑하는 내 딸에게 엄마 없는 아이가 되는 슬픔을 줬다고 자책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 딸아이에게 더해지는 어떤 슬픔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마구 울지도 못하는 내 딸. 사랑한다.

정일호 <jeongilho@hotmail.com>

■ 한 부모 가정 건강하게 꾸려가려면

.한 부모 가정인 것을 인정하고 드러내라.

.헤어진 부모에 대해 긍정적인 상을 심어 줘라.

.이웃과 사회의 도움을 달게 받아라.

.경제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라.

.아이에게 다양한 가족형태를 체험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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