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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문화 백과』 왜색 논쟁을 읽고|"식민 용어 「농악」 고집할 이유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민족 문화 백과』에 대해 지난 7월30일 (일부 지방 31일자) 김창진씨가 제언을 하자 편집 책임자인 박성수 교수가 반론을 제기하고 (8월6일) 여기에 김창진씨가 또 다시 반론을 제기했다( 13일).
먼저 한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작업에 뛰어들고 있음을 직시하면서 늦게나마 우리문화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김창진씨의 제언에 대해 박성수 교수는 충분한 분석과 연구도 없이 즉흥적인 원색 비방을 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 지식층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해 충분히 연구·조사하여야 하는데도 불구, 오히려 대물림으로 이으려 하는 명예욕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풍물굿을 주로 공부한 사람으로서 박 교수의 농악이라는 용어에 몇 마디 하려한다.
농악이란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농악이란 용어는 개념의 혼란을 가져온다.
농민이 하는 악, 즉 농사일에만 쓰이는 음악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농경설 못지 않게 군악설·사찰설도 만만치 않다. 복장이나 진풀이, 그리고 상쇠의 선소리 등을 보면 어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악만을 하는 게 아니다.
춤·재담·진풀이·극 등 다양한 요소가 깃들여 있다. 따라서 농악이란 용어는 농악이 지닌 여러 가지 기능과 다양한 형태를 수렴해주는 용어로는 부적합하다.
농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굿·매굿·풍물굿·두레 등 다양한 우리 용어가 있음에도 1936년 조선총독부에서 쓰기 시작한 농악이란 용어를 끝까지 고집하는 박교수의 저의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셋째, 중요 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 받은 이리농악을 이리풍물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지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정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박 교수에게 문화재 지정에 대해 한번 더 연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문화재 지정이란 표본이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우리 문화를 어떻게 보는지 묻고 싶다.
틀린 곳이 있으면 과감히 지적하고 시정해야할 지식층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자손 대대로 대물림하려는 박 교수의 의도를 분명히 밝혀달라.
내가 풍물이라 하지 않고 풍물굿이라 함은 풍물이란 악기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굿물이라 하기도 한다. 굿이란 우리가 흔히 종교적 염원으로 축소 내지는 미신 등으로 매도하는데 여기에서의 굿은 보다 폭넓게 사용하여 판 (씨름판·노름판·굿판 등)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펜의 힘은 위대하다. 박교수의 펜이 자손만대로 이어짐을 명심하고 좀더 다각적인 연구로 5천년 역사와 문학가 몇 사람에 의해 오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영태 <조선 풍물굿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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