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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6070 추억으로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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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프로레슬링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26일 오후 서울 하계동 을지병원 장례식장. 만성신부전증으로 숨진 프로레슬러 김일(77)씨의 제자인 이왕표(50)씨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레슬링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수십년간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현재 한국프로레슬링연맹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씨를 비롯한 후배 프로레슬러들은 "마치 부친상을 당한 기분"이라며 "아버지를 잃은 상황에서 고사 직전의 프로레슬링을 어떻게 되살릴지 걱정"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 잊혀지는 프로레슬링의 추억=1960~70년대 국민 스포츠로 떠올랐던 프로레슬링은 김일 등 간판스타가 링에서 물러나면서 수십년째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올 8월 '백드롭의 명수'장영철씨가 파킨슨병을 앓던 중 사망한 데 이어 김일씨까지 별세하면서 사실상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두 기둥이 무너졌다.

김일.장영철 등과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1세대 프로레슬러'가운데 생존자는 천규덕(74).여건부(68) 씨가 유일하다. 현재 천씨는 프로레슬링 동호회 고문 등을 맡아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으며, 여씨는 일본에서 장기간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세대가 활동하던 60년대는 프로레슬링의 전성시대였다. 김일과 장영철 등의 인기는 현재의 박지성이나 이승엽을 능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65년 5개국 친선 프로레슬링 대회 도중 폭력 사태가 터지고, 장영철이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폭로하면서 프로레슬링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70년대 중반에 데뷔한 이왕표.역발산 등이 명맥을 이어왔으나 한번 돌아선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 "무늬만 프로, 운영은 아마추어"= 전성기에 200여 명에 달했던 프로레슬링 선수는 현재 15명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가 둘로 쪼개져 있어 정기대회를 개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는 대한프로레슬링협회와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2곳이다. 협회별로 7~9명의 선수가 등록돼 있다. 이들은 지방 도시를 돌며 연간 20차례 정도 시합을 치르거나 한두 차례 국제경기를 치른다.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김두만 회장은 "과거 김일.장영철 선수가 앙숙으로 지내면서 프로레슬링계에 파벌이 형성됐다"며 "갈라진 협회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해 대중적 인기를 끌 만한 대형 시합을 치르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협회는 2004년 말부터 잠실체육관 내에 프로레슬링 전용 경기장을 지어 매주말 시합을 진행했지만 관객이 100명도 채 들지 않아 최근 전면 중단한 상태다.

◆ 프로레슬링의 부활?=김일씨의 타계를 계기로 "프로레슬링을 부활시키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올 12월엔 김일 선수를 추모하는 경기가 서울과 중국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특히 미국 프로레슬링의 인기로 관련 인터넷 카페가 잇따라 개설되는 등 붐이 조성되고 있다는 게 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미국 프로레슬링에 대한 관심을 국내 프로레슬링으로 옮기겠다는 복안이다.

이왕표씨는 "한국 프로레슬링은 상업성이 강한 미국과 달리 애국심을 자극하는 국민 스포츠"라며 "스타 선수를 적극 발굴해 토종 프로레슬링의 특성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올 2월엔 국내에서 관객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대회인 '임팩트 2006'이 개최되기도 했다. 이 경기는 21년 만에 처음으로 TV로 생중계됐다. 이 대회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역발산씨는 "팬 층을 넓히기 위해선 TV 중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27일 고 김일 선수 빈소(을지병원)를 조문하고 정부 차원에서 추서가 결정된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을 유족에게 직접 전달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고인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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