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농수산물 경매사 이강하씨|정확하고 빠른 상품성 평가 중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어-』, 『헤-저』.
약간 쉰듯한, 그러나 우렁찬 목소리가 오늘도 어김없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 시장의 새벽을 연다. 휴일도 없이 오전 2시면 장이 섰음을 알리는 경매사들의 독톡한 신호음이다.
이를 신호로 해 중매인들의 값을 매기는 수신호가 바삐 움직인다.
상대방이 못보도록 비닐이나 골판지로 가린 중매인들의 수신호 (호가) 중 가장 높은 값을 낙찰되는 것이다.
『농어민고 소비자를 함께 위한다는 사명감, 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일해야 하는 희생 정신이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경매사 경력 6년째인 이강하씨 (47·서울청과 과실부차장)의 경매사 자격론이다.
경매사는 이론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기가 중시된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련된 법률상식, 유통·관리 업무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지만 빠른 경매 요령과 정확하고 신속한 상품성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16일 처음으로 시행된 경매사 국가자격시험도 이론 30%, 실기 70%로 평가토록 돼 있다.
수박·사과·포도·감귤 등 과실류 경매의 베테랑으로 꼽히는 이씨의 경매 기술 또한 철저한 경험 전수와 축적에서 비롯됐다.
시골 출신에 고교를 나온 그는 63년 용산에서 청과시장 경비원으로 농수산물 도매 시장과 인연을 맺었다.
70년대 초 그는 경비 대장의 자리를 받았으나 「앞날을 생각해」 판매과의 말단 직원을 자청, 경매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85년 용산 청과시장이 가락동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과실부문 경매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과실의 상품성을 평가하는 다섯가지 특성으로 신선도·색깔·형태·맛·촉감을 따져야 한다는 이론을 세우기도 했다. 요즘은 회사 안은 물론 농수산물 유통 공사의 초총을 받아 실기 강의를 한다.
그가 받는 월 급여는 1백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그는 농수산물의 도맷값을 결정지어주는 경매사답게 농수산물에도 철저하게 수요 공급의 원칙이 지배함을 강조한다.
『올해 배추·무·수박 등 과일 값이 오르니까 전체 물가가 들먹거린다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농산물 값이 오를 땐 난리면서 폭락했을 때 정부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또 농민들에게도 『값을 잘 받아달라고 하기 전에 잘 받을 수 있도록 상품화에 신경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과실의 경우 요즘 농약 오염 문제가 소비자들의 관심이므로 이를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는 등 소비자들의 기호·감각에 갈 맞춰야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우루과이라운드가 무엇이고 그 협상이 농산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어오는 농민들이 많습니다. 정부에서 우선 우리부터 자세히 가르쳐 주면 좋겠어요』. 현재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활동중인 경매사는 1백24명. 새벽을 여는 그들의 쉰 목소리에 우리 농어촌의 현실이 배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