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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3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3부 남로당의 궤멸/“조만식­김삼룡 교환하자”/김일성 제의 1주만에 남침… 당 재건 「물거품」
5월30일의 제2대 총선거가 임박해 오고 있었다. 남로당원은 한사람도 출마하지 못했지만 이 선거의 결과는 남로당 지하당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었다.
나는 안재홍의 당선뿐만 아니라 서울의 조소앙ㆍ윤기섭ㆍ박건웅 등 반이승만,반한민당계 및 중간 무소속계의 대거 진출에 남로당의 활로를 구하려고 했다.
무소속 후보자에 표를 모으도록 하부에 지시했다.
조소앙과 조병옥의 정면충돌은 전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제2대 총선거 입후보자중 조병옥은 우익측의 대표자격이며 조소앙은 좌익측의 최대 거물인데 다른 입후보자 없이 단둘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조소앙은 인기는 있으나 권력과 금력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 지하당에서는 조소앙이 이긴다고 보고 있었다. 조소앙과 조병옥의 집은 다같은 돈암동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았으나 조소앙 집에 비하면 조병옥의 집은 대궐이었다.
선거결과는 예상을 훨씬 넘어 조소앙이 전국 최고득표로 조병옥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서대문 선거구의 윤기섭,용산선거구의 박건웅,그리고 평택의 안재홍 등 반이승만ㆍ반한민당계 입후보자들은 거의 다 당선됐다. 독촉계,한민당계는 다 합해도 2백10석중 50석도 되지 않았다. 만일 김일성의 무모한 남침이 없었더라면 이승만 정권은 52년에는 소멸되었을 것이다.
나는 제2대 국회가 개원되고 국회의장ㆍ부의장이 선출되면 안재홍과 조소앙을 방문,남로당 지하당의 사활문제를 조금씩 내비쳐 52년 정권교체 후에는 남로당이 토착화 되도록 추진하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6월10일께가 되자 이상한 정보가 들려왔다.
해주 남로당 연락소 최고간부의 한사람인 박승원이 침투해 와서 전주시내에 잠복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천경찰서에 조복애를 위시해 이북에 가있던 남로당 핵심간부 7∼8명이 침투 잠입해 오다가 체포되어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시로서는 남로당 지하당을 재건 보강하기 위해 파견한 것이라고 밖에 분석할 수 없었다.
박승원은 경북 영주사람으로 해방전에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검거되어 전향,매일신보 기자를 하다가 해방 후 서울신문 정치부장,그리고 각 신문사 안에 있는 공산당 프락치 책임자를 거쳐 46년 가을 해주로 갔다. 그리고는 권오직 밑에서 활동했다. 그가 서울신문 정치부장으로 있을때 접촉이 있어 나와는 잘 아는 사이였다. 조복애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중학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조복애는 체포되었으니 할 수 없지만 박승원과는 조만간에 연결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박승원을 만나면 김삼룡ㆍ정태식 없는 남로당 지하당을 박헌영이 어떻게 하려고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는 이원조ㆍ김남천 등과 같은 또래로 나보다 열살쯤 위였다.
월북한 남로당원이 남한으로 재침투하는 비밀스런 움직임이 있을 때인 6월18일 김일성은 돌연 북조선 최고인민회의와 남한 국회를 합동해 통일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또 서울에서 체포된 김삼룡ㆍ이주하와 북한에 감금되어 있는 조만식을 교환하자는 제의도 했다.
6백명에 가까운 북조선 최고인민회의와 2백10명 밖에 되지 않는 한국국회의 합동을 한국정부가 수락할리는 없었으나 김삼룡ㆍ이주하와 조만식과의 교환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6월25일이었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나는 아지트에서 쉬고 있었다.
점심때 아지트 할머니가 시장에 갔다오면서 『아이구! 큰일 났어요. 전쟁이 일어났대요. 지금 미아리고개에 피난민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대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나의 귀를 의심했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듣고 다녀요』하고 나는 할머니를 나무랐다. 『아니에요,나도 처음에는 거짓말이라 생각했는데 군대차가 왔다 갔다 하며 피난민들이 들이닥치고 있어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문밖으로 뛰어 나가 바로 미아리고개 쪽으로 달렸다.
미아리고개 밑에 당도하니 정말 보따리를 지고,소를 몰고 오는 피난민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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