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약업계 연구개발 뒷전…광고만 열 올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내의약품이 제조업체간의 과당경쟁에 따른 지나친 판촉비 지출과 유통과정의 모순으로 가격차가 커 의약품에 대한 신뢰성 저하는 물론 국민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사단법인 보건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펴낸 연구결과보고서 『우리 나라 제약산업의 미래』에서 밝혀졌다.
보고서에서 이 연구소의 이기효 연구원은 『상위 27개 제약회사의 광고선전비·판매 촉진비·접대비 등의 전체 판촉비가 매년 전체 매출액의 14%에 이르나 연구개발비는 0.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제일기획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88년 국내 의약품 광고비는 1천3백66억 원으로 같은 해 각종 광고비로 사용된 총 1조2백44억원의 13.3%를 점유해 광고비 지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1위인 식품·음료의 2천억원에는 못 미치나 3위인 화장품·세제의 8백78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
이 연구원은 과다한 판촉비용의 지출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 『의약품 제조원가를 상승시키지 않을 수 없음에 따라 ▲국민의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을 필요이상으로 높이고 ▲비싼 약의 처방을 부추기며 ▲약품의 오용과 남용을 낳게 한다』고 말했다.
또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의 강대용 정책실장은 『광고 선전비 외에도 지난해 제약업체가 의료전문가들에 대해 뒷거래형식의 랜딩비·리베이트·임상연구비·향응 등 각종 명목으로 사용한 소위 「검은 돈」이 2천억∼2천5백억원이나 됐다』고 폭로했다.
강 실장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국내의 의약품 생산고 2조4천억원(추정액)의 10%나 돼 이런 뒷거래는 결국 국민의료비의 상승, 곧 국민부담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병·의원의 진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은 30∼35%로 미국(6.7%), 스웨덴(4.9%)에 비해 4∼6배나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국립의료원의 신석우 약제국장은 『국내 보험 약가 관리제도의 모순으로 같은 성분의 보험 약 가격의 격차가 2배 이상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신국장은 『제조업체간 또는 도매업소간의 과당경쟁으로 국공립병원은 보험 약가 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덤핑되고 있으며 사립병원은 실 거래가격과 신고가격과의 차액을 판촉비와 사후 할인(랜딩비·리베이트)형식으로 처리하거나 장학금 등의 명목으로 챙기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 결과 고가약품처방이나 과잉투약이 발생해 소비자부담을 가중시키거나 품질저하 등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
신 국장은 원만한 의약품의 유통에 대해 『의약품거래는 공개 경쟁입찰을 원칙으로 거래되도록 하고 수의계약을 하는 경우 행정지도의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주의 경우 동일성분 보험 약가의 격차는 20센트를 벗어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가격상승요인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이를 보조, 약가의 격차해소를 해주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정교현 식품의약품과장은 『국내 의약품제조회사의 난립으로 지난 63년부터 제약회사와 소매약국간의 직거래방식이 등장, 소매가격의 과다표시와 덤핑판매로 유통 질서 혼란은 물론 소비자부담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 최근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모제약회사 주사약제의 경우 표준소매 가격이 3만원으로 표시돼 있는데 실제 구입가격은 1만5천원이었다는 신고가 있어 실태 조사한 결과 도심지의 대형약국에서 8천∼1만2천원, 주택가 소매약국에서는 2만5천원에 팔리고 있었다』며 제품출하가격을 표시케 하는 등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기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