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극복」 경영인 10인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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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구조개선해 전화위복 계기로
최근의 중동사태는 「고유가시대」의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1,2차 석유파동의 험난한 과정을 겪은 한국경제도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확대돼 충격 흡수여력이 조금은 갖추어져 있기는 하나 너무 허술한 구멍이 많다. 고유가시대의 도래가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10인의 경영자에게 들어본다.<경제부>
◎해외건설시장 다변화 서둘러야/김석준 쌍용건설사장
국내 건설업계에 있어 중동시장의 비중은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있으나 쿠웨이트사태가 악화될 경우 우리 근로자들의 신변안전문제가 대두되고 공사미수금등을 받기 어려워 해당업체로는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전쟁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중ㆍ장기적으로 보면 다소 긍정적인 면도 있다. 유가인상과 더불어 이번 사태로 중동국가들이 군사 및 원유저장시설 등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할 것으로 보여 공사물량 자체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동시장은 과거의 예에서도 보듯 안정성이 낮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할 것이다. 한편 국내업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건설시장을 미국ㆍ일본ㆍ동남아 등지로 더욱 다각화해 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화 공급과잉… 계획 재검토를/이정성 럭키사장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다른 나라와 달리 LPG나 천연액화가스가 아닌 나프타에 전적으로 원료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동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그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유화제품은 또 여러가지 관련제품의 원료로 쓰이기 때문에 석유에 의존하는 모든 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를 초래케돼 문제가 의외로 심각해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단기적으로 석유안정기금 및 원유비축분의 효율적인 활용등에서부터 중장기적으론 공급과잉 상태에 있는 석유화학원료와 제품의 시설투자계획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업계 스스로도 장기공급비중을 늘려 유가상승이 제품값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유가 예상… 물량확보 적극추진/김항덕 유공사장
중동사태가 어떤 형태로 매듭지어지든 향후 상당한 수준의 고유가가 예상된다.
현재 국제원유시장의 수급상황을 고려할때 더이상 사태가 악화되지 않는한 현물시장등으로부터의 원유수입은 가능하나 유가상승 부담은 피할 수 없다.
정유업계는 과거의 오일쇼크경험을 바탕으로 원유 및 제품비축확대,원유도입선 다변화,해외유전개발등을 꾸준히 추진해왔지만 앞으로도 원유의 안정확보를 위해 해외유전개발을 적극 추진해야한다.
또 경질유의 구득난 심화에 대비해 분해 및 탈황시설등의 고도화 설비를 갖춰 원가를 절감하고 제품공급 능력을 늘려야 한다. 소비절약촉진을 위한 국내유가의 국제가격수준으로의 조정등 가격구조개편도 필요한 과제다.
◎설비고쳐 에너지코스트 최소화/정명식 포항제철사장
세계철강수요는 2차 오일쇼크때인 79년 5억1천8백t에서 82년엔 4억5천6백만t으로 감소했었다. 또 앞으로는 유가상승이 불가피해 철강소비구조도 경박단소 등 보다 에너지절약형으로 바뀔 전망이다.
포철의 경우 에너지소비는 국내전체 소비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철강업이란 한마디로 에너지소비산업으로 그만큼 에너지절약이야말로 사활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포철은 에너지코스트를 최소화하기 위해 석유의존도를 80년 11%에서 작년엔 2.7%로 줄인바 있다. 앞으로도 열병합 발전투자확대등 설비개선을 통해 5년후에는 조강t당 열량원단위를 세계최고수준인 4백98만㎉로 줄일 계획이다. 또 석탄등 에너지보유국에 진출을 확대,에너지의 장기적 안정확보기반을 강화해 나가겠다
◎노후유조선 대체수요 증가 기대/김태구 대우조선사장
단기적으로 고유가 영향으로 중동지역의 유조선 발주량 감소라든지 현재 건조중인 선박의 처리문제등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보면 현 중동사태가 원만히 타결되더라도 80년대 저유가 시대와는 달리 유가가 어느정도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따라서 그간 저유가로 지연돼온 노후선박의 경제선대체 가속화와 해저유전개발 활성화에 힘입어 해상플랜트분야의 수요증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금리인상 대비 리스크관리 강화/황창기 외환은행장
국제유가상승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경기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금리인하를 유도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상승을 유도할 것이다. 일본 역시 인플레 우려로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같은 미 일의 금리인상은 서독등 유럽주요국에 파급되고 결국 전세계적으로 금리상승을 유발시킬 전망이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 오일머니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금융시장이 위기에 부딪칠 가능성은 없으나 국내금융기관들은 환율불안ㆍ금리상승에 대비해 자산ㆍ부채관리상의 리스크관리를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원료확보ㆍ가격안정 공동노력/이병섭 한일합섬사장
화섬업계는 다른 산업보다 원료 및 에너지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유가가 배럴당 20달러이상으로 오르면 그만큼 제조원가 상승압력을 크게 받게 된다.
업계는 지난해부터 원료가격이 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올 경기호전을 크게 기대했는데 갑작스런 중동사태로 나일론ㆍ폴리에스터ㆍ아크릴섬유를 생산하는데 상당한 가격상승압력을 안게 될 것 같다.
◎원가절감ㆍ에너지절약형 개발/윤종룡 삼성전자가전부문 대표
전자산업은 유류ㆍ전력비용비중이 높지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상당한 타격도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번 사태로 유가가 50%정도 인상되면 생산비용이 올해말까지 약 20억원가량 추가될 전망이다. 만약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연간 70억∼80억원 정도의 비용이 더 늘어나게 된다.
또 플래스틱ㆍ사출등 부품협력업체의 경우 유가인상 및 석유화학원자재값인상 등의 영향을 상당히 받게되며 이는 결국 제품메이커들에도 부품구매가 인상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저연비ㆍ경량화 기술개발 박차/김선홍 기아자동차회장
과거의 1,2차 석유파동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유가의 급등은 자동차수요의 격감과 중ㆍ대형승용차비중의 현저한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생산비자체가 커져 차값 인상요인으로 작용하고 연료비지출도 늘어나 소비자의 소유욕구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들은 대응하기에 따라서는 세계진출을 확대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유가인상 자체가 세계자동차시장의 급속한 판도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비용 절감등 경영개선 급선무/이근수 한진해운대표이사
국내 34개 해운업체들은 이번 중동사태이후 세계 주요항구에서 판매하고 있는 연료유(벙커C유)의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그 대책마련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즉 중동사태 이전에 t당 75달러선에서 거래되던 선박용기름값이 지난 8일에는 평균 1백30달러로 폭등하는등 항구별로 무려 50∼1백%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해운업계는 연료유가를 제외한 타부문의 비용을 최대한 줄여나가는등 경영개선에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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