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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대만증시 폭락은 투기거래 탓"-일서 「버블이론」주장… 국내서도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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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들어 대만증시가 폭락을 거듭하고 동경증시도 열세를 면치 못하자 그 이유를 「버블(거품)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버블경제란 한마디로 각종 자산가치가 실질적인 가치나 수익력에 비해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상태를 말한다. 즉 부동산이나 주식에 대해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적인 거래가 성행함에 따라 가격이 실제가치보다 훨씬 높게 형성되고 이같이 부풀어 오른 가격은 어느 순간 공급과잉이나 제도상의 규제 등으로 인해 투기적인 요인이 사라지게되면 거품처럼 급작스럽게 꺼진다는 것이 버블이론의 골자다. 국내에서도 신한종합연구소가 국내증시의 침체요인을 버블·현상으로 파악하는 책자를 내놔 찬·반 양론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편집자주】
버블이론 주창자들은 지난29년 대공황직전의 미 뉴욕증시를 전형적인 버블현상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최근의 대만과 동경증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있다.
그러나 버블이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가의 급등락에는 투기적 요인 외에 정치적 상황·실물경제의 움직임, 특히 미래의 성장에 대한 기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실증적인 근거도 없이 단순히 주가가 급등한 뒤 폭락했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이를 거품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거품의 존재여부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도 주가가 실물경제성장에 비해 단기간에 폭등한 후 경제성장이 지속되는데도 폭락해버리는 현상을 나름대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실물경제는 저 성장임에도 금융만은 활황을 보여 소위 「금융장세」를 형성한다든지, 제조업부문보다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부문이 이상 비대해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대만·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의 부는 급격하게 늘어났고 특히 1916년부터 20년까지 저소득층 및 중간소득층의 소득증대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늘어난 소득으로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나 유가증권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정부는 대량의 공채를 발행, 그때까지 증권과 거리가 멀었던 대중을 증권시장에 끌어들였다.
28년에 들어와 주가폭등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NT25지수(뉴욕타임스 25개 공업주 평균지수)는 2백45에서 3백31로 1년간 35·1%나 폭등했다. 이때 주식시장의 특징은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가 급팽창한 것인데 이는 돈이 적은 일반대중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용거래로 주식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증시에는 공급과잉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력공급 및 전학사업이 급성장하면서 이들 회사들간에 합병이 일어났으며 이때 막대한 규모의 주식이 새로 발행된 것이다.
또한 투자신탁회사들도 활황을 틈타 발행주식수를 늘림으로써 이 두 분야에서 생산활동과는 관계없는 막대한 주식이 발행돼 주식의 실질가치를 떨어뜨리고 수급불균형을 초래했다.
26년에 1백으로 출발한 다우존스 공업지수는 29년9월3일 3백81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10월부터 폭락을 거듭, 32년7월에는 41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즉 3년반 동안 3·8배가 올랐던 주가는 그후 3년만에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또한 87년10월에 일어났던 소위 「블랙먼데이」(검은 월요일)도 거품현상으로 해석한다.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위기를 거치면서 세계경제는 저성장기로 접어드는데 반해 주가는 급등, 다우존스 공업지수는 84년초 1천에서 87년1월 2천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생산활동의 뒷받침이 없는 금융장세가 펼쳐졌다.
즉 저성장→투자율저하→자금수요약화→기업과 금융부문의 잉여자금증가→금융수익으로 생산적자를 보완→금융활황의 형태로 이는 저성장하의 금융활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스태그플레이션인 것이다.

<대만>
지난86년 8백80에 불과했던 가권지수는 지난2월10일 1만2천4백95까지 폭등, 4년만에 13·2배가 오르는 놀라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40년 동안 매년 평균8·7%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부를 축적했던 대만사람들은 이 돈을 소비재와 주식을 사는데 쓰기 시작했다.
88년5월까지만 해도 27개에 불과하던 증권사는 현재 3백57개로 늘어났고 주식인구도 2년 반만에 63만여명에서 4백만명으로 늘어났다.
하루에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대금이 60억 달러(한화 4조2천억원)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으로 대두됐으며 일개회사의 주식시가총액이 미국 다국적기업의 그것과 맞먹을 정도까지 늘어났었다.
그러나 2월을 고비로 금리인상과 총선거에 따른 정국경색 등으로 인해 폭락하기 시작한 주가는 현재 5천 포인트를 맴돌면서 불과 5개월만에 7천 포인트(60%)가 떨어져버렸다.
말 그대로 주식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국민들의 주식투기로 음식점에까지 주식시세판이 설치될 정도로 열병을 앓은 대만증시는 거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폭락과 함께 거래대금도 하루 20억 달러 수준으로 활황 때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국민들이 생산활동을 도외시하고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동안 대만정부는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을 당초 7%에서 최근 6%로 하향조정하기에 이르렀으며 한 일간지는 『국민들이 근면과 성실의 가치를 재발견하지 않는 한 주가는 다시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본>
작년 연말 일경평균지수가 3만8천엔을 돌파하자 올해에는 5만, 심지어 5만5천엔까지 상승할 것이란 장미빛 관측이 난무했었다.
그러나 올 들어 주가는 폭락을 거듭, 지난4월에는 2만8천엔대까지 27%나 폭락하는 최악의 상태를 맞이했다.
동경증시는 지난82년10월 6천8백49엔이었던 일경평균주가가 작년12월29일 3만8천9백15엔으로 7년 동안 6배 이상 치솟았다.
80년대 동경증시가 이렇듯 폭발적으로 성장한데는 ▲저금리 ▲저원유가 ▲달러화 약세라는 3저 호재에 따른 금융장세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풍부한 돈이 바탕이 된 금융장세는 끝나고 기업의 성장성에 의해 주가가 움직이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그 동안 동경증시의 활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폭락사대를 예견하는 견해도 있었다.
동경증시는 이제 체질이 변하고있다.
주도종목에 거래를 집중시키기보다 많은 종목에 분산 투자하는 식으로 바뀌고있어 평균주가가 올라간다 해도 개별종목의 지속적인 주가상승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손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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