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 학술회의/오사카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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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족상봉 김석형씨 “울고 싶은 생각뿐이오”/김씨 큰소리로 논문낭독… 대답은 귀찮은 듯 짧게/분과별 토론장 대체로 한산… 학술적 긴장감 적어
3일 오후부터 시작된 제3차 조선학 국제학술회의 분과별 토론은 전문적인 학술토론장이라기보다는 「일단 한번 모여보자」는 취지에 충실한 듯 학술적 긴장감은 없고 이완된 인상을 주었다.
대부분 50여명 이상 수용가능한 분과별 토론장에는 5∼10명선의 발표자외에 10여명 정도의 참가자들만이 귀를 기울이고 있어 매우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처럼 다소 엉성한 듯한 분위기는 주최측과 참석자들의 자세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최측은 참가자수 늘리기에 치중,학문수준이 별로 높지않은 대학원 박사과정 정도에도 초청장을 보냈고,발표자들도 새로운 이론등의 소개보다 과거 자신들의 연구논문을 조금씩 수정한 정도여서 전반적인 수준은 국제학술의 격에는 맞지 않는다는게 한국측 참가자의 평.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이완된 가운데에도 북한의 원로사학자 김석형씨의 발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비교적 진지하게 진행.
김씨는 그러나 이날 오전의 「갑작스런 가족상봉」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자주 창밖을 내다봤으며 발표는 자신의 논문 「삼국사기의 왜침범기사에 대하여」를 소리높여 낭독하고 질문에도 짧고 간단하게 대답해 「모든게 귀찮다」는 인상.
김씨의 「낭독」이 끝난 뒤 한국의 임효재교수(서울대)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됐는데 질문에 대해 답변은 퉁명스럽게 하거나 엉뚱한 질문에는 면박을 주어 좌중에 한때 웃음.
이 자리에는 신용하교수등 국내사학자,미하일 박 모스크바교수,북한의 김철식 사회과학원부원장 등이 참석했고 44년만에 외삼촌을 상봉한 김씨의 외조카 최선혜씨도 특별히 나와 계속해 카메라로 김씨를 촬영.
○…3일 이루어진 북한 김석형씨(75)의 가족상봉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확인케 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김씨의 동생들과 매제 등은 김씨를 만나려는 일념으로 회의장에 「주저없이」들어갔고,이를 「웬만하면」막아보려했던 북측도 김씨의 기자회견까지 허용했으며,김씨도 처음에는 덤덤한 표정을 지었으나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 가족의 첫상봉은 이날 오전 김씨의 막내동생인 성은씨(60)등 가족 6명이 회의장에 들어와 개회사가 끝나 나가려던 김씨에게 달려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측 참석자들이 김씨를 데리고 나가 이들 가족들은 몇마디 인사만 나눈채 헤어졌다.
북측 김철명단장은 전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자 『대회를 방해하려는 책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김단장은 곧 태도를 바꾸어 『어떻게 만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한 후 북측 관계자들과 회의끝에 이날 오후 5시30분 김씨와 김씨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고 발표.
회견장에서 김씨는 오전 만남때 덤덤한 표정을 짓던 것과는 달리 44년 이별의 고통을 털어놓듯 계속 울먹였다.
김씨는 서두에 『오래간만에 만나니…』라고만 말하고 계속 울기만 했는데,격정을 가라앉힌 후에도 『울고 싶은 생각뿐이오』라고 말했다.
김씨는 성은씨가 『오빠,오래 살아야해요. 그래야 또 만나지』라고 하자 성은씨의 손을 끌어잡았고 올케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는 『10년전에 죽었어』라고 답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회견을 마친 김씨 가족들은 이날 저녁 오사카시내 한식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오사카=안성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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