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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들 터부·버릇도 가지가지|이강돈 아내의 꿈으로 타격운 점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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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스포츠는 기량만으로 승부가 판가름 나지 않는다. 심지어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날의 승운이 묘하게 작용하는데 따라 희비가 엇갈리며 예상된 결과가 빗나가기 일쑤다.
첨단 기기가 동원되고 기록의 스포츠로 불리는 프로야구에서 운수·미신 등 터부를 따르며 행운을 기대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적지 않아 아이로니컬 하다.
현재 공격 5개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볼을 노려 치는 사나이」 이강돈 (빙그레·30)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체력이 뛰어난데다 스윙이 짧아 지난해부터 최고의 타자로 각광받고 있으나 부인 김미숙씨 (29)의 간밤 꿈에 타격 운수를 재보는 연약한 (?) 스타다.
부인 김씨가 꿈을 잘 꾼 날이면 타격이 좋아지고 꿈을 안 꾼 날이면 저조하다는 것이 이의 솔직한 얘기다.
지난 6월 이는 부인 김씨가 백마 네마리의 고삐를 잡고 있는 꿈을 1천원에 사들여 그날 홈런 포함, 4타수 4안타 4타점의 맹타를 기록하기도 했다며 꿈에 관해 남다른 집착력을 보이고 있다.
해태 외야수 이순철 (29)은 타구장으로 이동할 때 항상 구단 버스의 좌측에 앉아야만 마음이 안정된다는 터부를 갖고 있다.
국가 대표 승마 선수인 이미경씨 (28) 와 지난 1월 결혼, 광주에서 신혼살림중인 이는 시즌 초반부터 슬럼프에 빠지면서 61게임에 출장, 1할9푼대의 극심한 타격 부진을 보여 새색시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해태는 기동력·펀치력을 겸비한 전천후 공격수 이의 부진으로 4강 다툼에서 난조를 거듭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해태 김응룡 (49) 감독은 10여년전 한일은행 감독 시절에 입던 「행운의 점퍼」를 다시 꺼내 손질하고 있다.
태평양의 김성근 (48) 감독도 꼼꼼한 성격으로 각종 터부가 많다.
우선 중요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는 가급적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며 부득이 만나야할 경우라도 평소 기피하고 있는 특정인은 여간해서 만나지 않는다는 것.
특정인을 만나게 되면 꼭 경기에 진다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OB시절 동대문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때 시내에서 장충단 쪽으로 가거나 을지로 쪽으로 가면 편한 길을 굳이 청계천에서 장충단을 돌아가는 훨씬 먼길을 선택하는 괴벽 (?)을 가졌었다. 그래야만 그날 경기를 이긴다는 금기를 철두철미 지킨 웃지 못할 일화다.
연패에 빠져 최하위로 몰락한 OB에도 발빠르고 재치 있는 타격을 보이는 김광림 (29)이 묘한 금기를 갖고 있는 괴물 (?)이다.
김은 경기에 나가기전 꼭 발을 씻어야 플레이가 매끈하게 잘 풀린다며 홈에서나 원정 경기에서나 발씻는 일만은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김은 올 시즌 타율이 0·181로 처져 발씻는 일을 그만 두어야할 안타까운 입장에 놓여 있다.
「깡통」 이강돈과 같은 애처가 그룹에 김시진 (롯데·32)을 빼놓을 수 없다.
김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부터 약혼식 때 받은 목걸이를 걸고 나와야만 강속구가 살아나며 마운드에서 안정감을 찾는다는 징크스를 지녀봤다.
목걸이를 잊고 나와 구단 직원이 경기 도중 김의 집까지 달려가 갖고 온 에피소드도 있다.
김은 롯데로 이적한 후에도 여전히 반짝거리는 목걸이를 걸고 나오고는 있으나 나이가 들면서 애정이 식은 탓인지 방어율 4점대로 5승3패를 기록, 크게 효험을 보고 있지는 못하다.
해태에서 LG로 이적한 차동철 (27)은 경기전 빨간색을 보면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다.
이들 외에도 진짜 신자 이만수 (32) 집사의 기도는 성실하기로 정평이 있다.
이는 시즌 초반 이틀걸이로 홈런을 쳐내 야구계를 진동시켰는데 특별한 타격 비결을 묻자 『모두 다 하느님 덕분』이라고 답변, 주위를 어리둥절케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삼성의 상승세를 주도하는 키스톤 콤비 유중일 (27)-강기웅 (26)은 경기 중에도 쉴새없이 재갈거리며 긴장을 푼다.
하도 재잘거려 선배들이 붙여준 별명이 「분답이」 (경상도 사투리로 말많은 사람).
선수들의 미신 (?)·버릇 못지 않게 구단도 승리를 위해 각종 영약 처방 (?)에 귀를 기울인다.
태평양은 지난 5월 느닷없이 구단을 방문한 자칭 청해 도사가 「빙그레와 태평양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을 것」이라고 예언하자 희희낙락, 팀 순위가 상승한 적이 있다.
OB가 치난 겨울 태평양을 따라 오대산 얼음 찜질을 다녀온 것도 이같은 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롯데는 동화사에서 참선하고, 삼성·LG 등은 연수원에서 각기 자기 암시 훈련 등을 했던 것도 장수를 위해 온갖 영약을 찾는 현대인처럼 승리를 향한 몸부림이라 하겠다.
이렇듯 프로야구의 이면에는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진기·명기 못지 않게 각종 미신·터부가 난무, 한층 흥미를 돋우고 있는 것이다. <권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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