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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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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현대인의 소외를 비관습적 언어로 그리는 대만의 차이밍량(蔡明亮) 감독. 그는 이미 '애정만세'(1994), '하류'(1997), '흔들리는 구름'(2005) 등으로 베니스와 베를린 영화제를 휩쓴 거장이다. 부산영화제와의 깊은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거의 매년 부산을 찾아 단골 게스트 1위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산을 찾은 그는 헝가리의 이스트반 자보 감독과 함께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객석을 빼곡히 채운 열기 속에 그는 "영화는 비즈니스가 아니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세상에 무협영화만 가득하다면 영화에 현실 도피 의미 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영화는 인간이 직면하는 고통과 현실을 다뤄야 한다. 스필버그의 드림웍스는 꿈의 공장이 아니라 돈의 공장이다."

독설에 결기가 느껴지듯 그가 처한 현실은 여전히 혹독한 듯했다. 거리에서 직접 표를 팔아 관객을 모으던 초기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전쟁 치르듯 영화를 찍는다. 마스터 클래스 도중 그는 돌연 "더 이상 부산에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이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부산을 사랑하고 부산의 성장이 기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과 같은 작가 감독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은 현실을 개탄한 것이니까 말이다.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외적 규모와 내실 모두를 챙겨 새로운 10년의 첫해를 무난히 치렀다는 평이다. 부산영화제는 이미 다른 영화제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세계 영화계의 성공 사례가 됐다.

문제는 이 같은 영화제의 성장과는 별개로 우리 영화시장에서 다양한 영화의 토대들은 날로 좁아진다는 점이다. 영화제 강국이 됐지만 시장의 획일화는 심화되고 있다. 물론 우리만의 문제도, 부산의 책임도 아니기는 하다. 한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차이밍량은 부산에서 매번 '왜 주인공은 늘 이강생이냐' 같은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관객과 영화저널의 수준이 답보 상태라는 얘기다. 정상급 영화제에 걸맞게 톱스타들이 뜨는 화려한 행사와 파티의 이면에, 해운대 밤 바닷가에 돗자리를 깔고 소주를 마시던 부산만의 인간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화가 산업.돈이 아니라는 차이밍량의 말은 비현실적이지만, 새로운 문화권력이 되고 있는 부산영화제가 경청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영화제는 그 무엇보다 가난하고 실험적이고 다양한 영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초심'을 그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