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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계절 읊은 한시, 맛깔스런 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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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다음 주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올해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실감이 덜하지만, 상강은 가을이 무르익어 어느덧 겨울의 목전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절기다. 상강에 어울리는 한시(漢詩) 한 수 어떨까.

"대나무는 푸른 그림자 나누어 책상에 드리우고/국화는 맑은 향기 보내어 나그네 옷에 가득하다/떨어진 잎도 능히 기운찬 형세를 만들어내는지/뜨락 가득한 비바람에 제 스스로 날아다닌다"(213쪽). 조선시대 선비 권우의 '추일절구(秋日絶句)'다. 여기에 "옷깃 가득 스미는 국화 향기가 선비의 가을을 고결하고 우아하게 만든다"고 한 줄 곁들인다면 그 시정이 한결 더할 것이다.

책은 이렇듯 24절기와 연관된 한시 80 여 편을 가려뽑고 제각기 걸맞는 해설을 붙였다. 도연명.구양수.두보 등 중국 시인부터 이규보.정약용 등 우리 시인까지 두루 걸치면서 딱딱한 해설이 아니라 물 흐르는 듯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적은 에세이다. 곧 봄이 옴을 알리는 입춘에 대해 지은이는 선물로 받은 매화 화분을 놓고 임종할 때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긴 퇴계 이황을 떠올린다. 그리고 상념은 이내 원나라 시인 원회(元淮)의 매화 시로 줄달음친다. "(…) 분명 이는 조물주가 성근 모습 싫어해서/일부러 때깔을 어여쁜 꽃으로 도와준 것일 테지/푸른 가지와 잎사귀 구분할 필요 있겠는가/온갖 꽃다지 속에서 최고의 지위 뺏았는걸".

한시의 아취에 욕심은 있으되 선뜻 접근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쉽고 깔끔한 교양서다. 지은이는 올초 다섯 권으로 새롭게 나왔던 '옥루몽'의 번역자 김풍기 교수(강원대 국어교육과)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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