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주도로 「통일미로 찾기」(범민족대회 어떻게 되나: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갑작스런 만남 의제등 못 정해/서베를린 11개항 기초 삼을 듯
범민족대회 제2차 예비실무회담의 서울개막을 앞두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번 회담은 범민족대회 추진을 위한 하나의 실무모임이라는 차원을 떠나 분단 45년동안 처음으로 민간단체의 초청으로 북측인사가 공식 입국한다는 점에서 통일논의의 새로운 「바람」을 몰고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민족대회는 노태우대통령의 지난 7ㆍ20선언 직전까지 정부에 의해 철저히 봉쇄당해왔기 때문에 이번 2차회담에 어떤 내용이 오갈지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다만 이번 회담은 지난 6월 서베를린에서 열렸던 1차 실무회담에서 논의된 대회의 목적ㆍ의제ㆍ일정ㆍ장소 등 전반적인 사항을 재확인조정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게 회담관계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당초 이번 회담은 정부의 원천봉쇄로 불가능해 보였다가 7ㆍ20 발표이후 개최쪽으로 급선회했기 때문에 준비기간이 거의 없었고 실무회담 차원에서 논의될만한 주요사항은 베를린회담에서 거의 합의됐기 때문이다.
전민련의 한 관계자는 『이번 회담이 구체적 계획없이 추진됐기 때문에 회담내용은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말해 특정주제를 토의하지 못하고 남북ㆍ해외대표등 3자간의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회담 첫째날인 26일 입국소감과 도착성명에 이어 둘째날에는 다소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망했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베를린회담의 합의사항을 재검토하고 통일의 원칙을 제시하는 「상징적 자리」가 될 공산이 크다.
이번 회담의 근간이 될 것으로 보이는 베를린회담은 지난 4월 범민족대회 해외추진본부가 90년 8월15일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 소집을 제의,이를위해 6월2∼3일 제1차 실무회담을 열자고 소집하면서 가시화됐다.
당시 전민련은 베를린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해 5월17일 국토통일원에 「북한주민접촉 승인신청서」를 제출,조성우씨등 전민련대표 4명을 파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5월19일 통일원은 전민련의 북한주민 접촉신청에 대한 회신에서 『북측은 지금까지 인도적ㆍ경제적 차원의 민간교류조차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회피해 왔다』고 전제하고 『이런 북한이 범민족대회를 고집하는 것은 사회단체연석회의등의 주장과 연계시켜 내부혼란을 조성하려는 책동』이라며 불허를 분명히 했다.
이에따라 범민족대회 제1차 실무회담에는 우리측이 불참한 가운데 북측대표단(단장 전금철)과 미국ㆍ유럽ㆍ일본ㆍ소련 등지의 해외동포들이 참석해 대회일정과 성격을 논의했다.
이틀간의 대회일정을 마치고 북측대표와 해외동포대표는 총11개 조항의 「제1차 실무회담 합의서」를 발표했다.
이 합의서의 내용이 범민족대회의 근간을 이루게 될 전망이다.
주요내용을 보면 우선 대회의 목적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촉진하는데 있다고 선언했다.
또 대회명칭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로 최종결정하고 대회주제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하여」로 정했다.
대회장소는 판문점으로 하되 제반 학술ㆍ문화행사는 서울ㆍ평양에서 분산개최한다.
대화참가자격은 7ㆍ4 남북 공동성명의 기본정신을 지지하고 조국통일을 진심으로 원하는 정당ㆍ단체ㆍ개인으로 하고 남북당국도 참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밖에 통일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으로 남북ㆍ해외각지에서 궐기대회ㆍ범민족대회ㆍ축하편지전달ㆍ이어달리기등 다양한 행사를 치르기로 계획했다.
또 대회운영은 남북ㆍ해외동포측에서 각각 1명씩 공동의장단을 구성,번갈아 가며 집행을 맡도록 합의했다.
북측과 해외동포대표는 이렇게 합의된 사항을 6월3일 전민련에 통보해왔고 이에따라 전대협등 각계단체가 범민족대회의 참여를 선언하고 나섰고 해외에서 범민족대회 지지대회가 개최되는등 범민족대회는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서베를린회담은 범민족대회의 기본 방향을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한편 전민련의 한 관계자는 이번 예비회담이 끝나고 난 뒤 수일내에 제3차 실무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제3차회담의 개최장소는 1차 해외(베를린),2차 서울이었던 만큼 평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이규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