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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25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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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김일성 남북 무력통일 구상/50년 2월에 지령… 남로당선 견제책 마련 고심
채항석부부와 정태식과 나와 넷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할때 정태식이 채항석을 보고 사교춤사건 이야기를 했다. 『그 좁은 방에서 남녀가 서로 부둥켜 안고 댄스를 한다는 것은 타락의 첫 시작이에요』하고 정태식이 채의 부인을 보고 말하자 『봐요! 내가 그렇게 마라 마라 해도 말을 듣지 않더니 정선생한테 꾸중을 들어 마땅하구만』하고 채의석이 거들었다. 『그만 두세요. 부인께서 반성하고 계시니』하고 내가 말렸다.
이런 일이 있은후 그녀는 나에게 심정적으로 가까워져 가끔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1950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이론진블록은 점점 더 중책을 맡게 되었다. 남북의 정세가 점점 달라지는 동시에 연락이 점점 더 어렵게되니 서울지하당은 평양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49년 12월에 김삼룡이 이주하를 평양의 박헌영에게 파견했던 것이었다. 서울지하당의 이론진블록에는 우수한 두뇌가 있으니 남반부 실정에 맞는 정책을 제때에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대해 박헌영은 이 요청을 대체로 수용하여 50년 5월에 있을 제2차 총선에 참가하는데 대해 일임하며 또한 지하당의 남북통일안을 수립하라는 것이었다.
김일성이 49년 6월 강제로 남로당을 병탐한 후부터는 남로당 지하당은 더욱더 쇠퇴해 갔었다. 평양의 김일성이 「남로당의 북로당화」를 위해 박헌영을 잡아쥐고 「통일적 지도」를 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해왔던 것이었다.
이에 맹종하지 못하는 박헌영과 김삼룡은 남로당 지하당을 살리기 위해 「남로당의 한국화」를 지향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입밖에 내면 김일성의 「남로당의 북로당화=김일성화」에 반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했다. 「반김일성=반당」의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 이론진블록에서 글을 쓸때에는 한자한자 신경을 곤두세웠다.
박헌영도 김일성에 대한 태도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경쟁자의 입장이었으나 제2인자의 자리에 만족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남로당 출신의 정치위원 이승엽도 박헌영에게 대하는 것보다 김일성에게 더 경의를 표하며 친근히 접촉했었다. 이에 대해 김일성은 박헌영과 남로당다에 대한 의혹심이 약간 가라앉았는지 박헌영에 대한 태도가 약간 너그러워졌었다. 이때가 49년 12월말이며 그 결과가 이주하가 가지고 온 두가지 지령이었었다.
그런데 2월말에 또다시 이주하가 받아가지고온 지령과 똑같은 지령이 우리 이론진블록에 전달되었었다.
우리 이론진블록이 담당할 것은 「남북통일」에 관한 것이었다. 이때까지 나는 미국의 신문ㆍ잡지ㆍ책자에 나타난 조선문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나의 주장은 남로당은 어디까지나 남조선의 정당이다. 그러면 무엇보다도 남조선주민의 이익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남로당은 살아남아서 자기역할을 해야한다.
그러자면 남북통일은 무력통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김일성의 남북통일 기본방책은 단기작전의 무력통일이다.
어떻게 하면 김일성의 이러한 극좌모험주의적 무력통일 방책을 견제할 수 있겠는가? 김일성의 방책을 견제하는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길을 걸으면서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날 나의 머리에 서광이 번쩍 비쳤다.
그렇다. 「미군의 개입이다」. 만일 남북통일에 인민군을 사용한다면 철수한 미군이 다시 진주,개입해 올것이다. 그러면 남북통일은 반영구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이것을 강조하자고 생각했다.
정책이라는 것은 일면적이어서는 안된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3백60도로 검토해 봐야한다. 그런데 하부당원들은 체포되고 굶주려 조직은 산산박살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래도 생명이 붙어있을때 하루속히 북에서 인민군이 들어와 구해주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로당의 기본방책은 평화적 장기전이었으나 당원대중은 장기전을 해나갈 역량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점에 나는 고민했다. 김일성의 무력남침은 막아야 했다. 남로당지하당이 지탱하자면 5월에 있을 총선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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