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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의장, 개성 가지 마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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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8일 오전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 회의가 열리고 있는 국회 당의장실. 김근태 의장의 인사말에 이어 회의가 비공개로 바뀌었다. 기자들은 회의장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참석자들이 김 의장에게 "20일 개성공단 방문 일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원혜영 사무총장과 김부겸.정장선 비상대책위원이 총대를 멨다고 일부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북한의 2차 핵실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집권당 대표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국민정서상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개성공단사업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는데, 굳이 지금 갈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제시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김 의장의 북한 방문이 가져올 수 있는 여론의 변화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당 지도부 대부분이 김 의장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 김 의장, "경협 의지 보여줘야"=그러나 김 의장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이 중단 없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미 공표된 일정을 무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이 "2차 핵실험이 이뤄지면 당연히 취소해야겠지만, 지금으로선 가도 괜찮다"며 김 의장을 거들었다.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로 볼 때 김 의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하더라도 관례상 동행하는 지도부의 상당수는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를 지켜본 당 관계자는 "북한 핵실험 이후 당 분위기를 감안하면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개성공단 방문의 문제가 아니라 여권의 대북 대응 기조 전반에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지금껏 김 의장은 기존의 대북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앞장서서 피력해 왔다. 김 의장은 정부보다 앞서 나가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보면 정부와 당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다른 목소리가 비슷한 비중으로 존재한다. 당장 당 운영의 또 하나 축인 김한길 원내대표는 18일 금강산 관광 지속 여부 등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정리 중인 상황에서 성급하게 개별 사업에 판단을 서두르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 당 대변인은 대북 규탄 성명=지도부 내에 미묘한 충돌이 있는 가운데 우상호 대변인은 "북한이 경고를 무시하고 2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남측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2차 핵실험은 국제사회 결의에 대한 전면 도전이며 동북아 평화를 해치는 행위"라며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북측이 지게 될 것이란 점을 거듭 강조한다"고 했다.

한편 비대위 소속인 김부겸.정장선.이석현 의원도 성명을 내 "북한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 위기가 2차 핵실험으로 인해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벼랑 끝 상황으로 가선 안 된다"고 북측에 경고했다. 성명서엔 이종걸.김교흥.김선미.박기춘.양형일.우제창.정성호.주승용.최규식 의원도 서명했다.

김정욱 기자

◆ 중앙특구지도개발총국=신의주와 개성 등 북한의 특구 개발을 위해 2002년 신설된 내각 부서다. 신의주 개발이 유보돼 현재는 개성공단 건설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총국장은 주동찬 남북경제협력위원회 북측 위원장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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