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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감독협에 한국인 10명 입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1938년 6월21일자「키네마순보」에는 조선 감독10명이 일본감독협회에 입회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적혀 있다.
-일본감독협회에 조선의 성봉영화단, 조선영화 등의 전속감독「10명이 입회를 신청해왔기 때문에 동 협회에서는 협의한 결과 정식입회를 결정, 경성부 명륜정 4 -206 서광제에 지부를 설치하기로 되었다. 입회자는 다음의 10명이다. 괄호 안은 최근의 감독영화.
서광제(군용열차) 이규환(여로) 박기채(무정) 방한준(한강) 안철영(어화) 김유영(애련송) 윤봉춘(도생록) 안석영(심청안) 전창근(복지만리) 안종화(인생항로)-.
자기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추고 살아온 히나쓰에이타로, 즉 허영은 동포영화인들의 이런 화려한 활동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조선영화의 기술분야를 개척한 이필우는 1914년께 대판의 천활소판촬영소에서 촬영·현상 기술을 습득하고 제국키네마에서 기사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필우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춘 적은 없었다.
할리우드에 가려고 1927년 늦은 가을 부산을 떠난 이규환도 형편상 일본으로 갔다. 경도의 신흥키네마촬영소 테스트에 합격한 그는 풍전사랑·구구건이·영목중길 등 밑에서 감독수업을 하고 있다 1932년 조선으로 돌아와 데뷔작『임자 없는 나룻배』전 10권을 찍고 있었다. 토키시대가 되어서도 방한준은 송죽키네마 포전촬영소에서, 박기채는 경도의 동아키네마에서 수업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많은 조선인이 일본영화계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고서도 일본영화계에서 일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허영의 선배들이 실증하고 있다. 그러나 허영으로서는 신분을 감추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단순히 차별에서 도망하려 한 것이 아니라 감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허영은「밀항한 조선인」이라고 같이 기소되었던 일본인 조감독 남전청은 예심판사로부터 듣고있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인데 왜 밀항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공범자 중에 밀항한 조선인이 있어서 좀처럼 보석이 안되었었다고 남전청은 기억하고 있다.
폭파사건으로 조선인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허영은 복잡한 심정으로 송죽 하가무촬영소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그러한 허영을 남겨놓고 의립 감독은 다른 조감독들을 데리고 동보영화로 이적해 동경으로 갔다. 허영에게는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었다.
송죽에서 조감독 신분으로 있던 허영은 거기선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던지 각본을 들고 신흥키네마의 영전아일 사장을 찾아간다. 그는 허영이 보석 중일 때 위로해준 적이 있었다. 허영이 원작·각본을 담당한『사도 오케사』가 목촌혜오 감독, 대우류태랑 주연 의 가요영화로 신흥키네마 경도촬영소에서 영화화된다.
그는 이때를 계기로 신흥키네마로 옮긴다. 그는 비록 일본인 행세를 하는 조선인이었지만 앞을 내다보는 눈이 빨라 처세술에 능한 사람으로 일본인 동료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1938년 조선인을 지원병으로 일본군에 편입하기 위한 육군특별지원법제도가 생긴다. 이해 12월에는 조선인에게 일본식 이름을 강요하는 창씨개명이 강행된다. 조선태생의 일본작가 미산수지 원작, 한운사 각본, 임권택 감독의『족보』(1978년)의 테마가 바로 그것이다.
1939년에는 영화를 선전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영화법이 공포된다. 극영화각본의 사전검열 등 여러 가지 올가미가 영화계에 씌워진다.
허영은 이렇게 황급한 시대상속에서 세 편의 시대극 원작·각색을 하고 있었다.『신부13야』(화가십삼야),『야스기부시 오히데』,『센료야쿠샤』 등이 그것이다.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인 그가 주로 일본의 시대극 각본을 썼다는 것은 재미나는 일이다.
그는 시대극각본을 쓰고 있었지만 신흥키네마의 기획부소속이었다. 그는 이런 일이나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른바「내선융화」라는 시류를 타고 비로소 조선으로 온다.
허영, 즉 일하영태랑은 우선 반도호텔을 숙소로 정하고 조선군보도부를 방문했다가 지원병 훈련소를 관장하는 조선총독부학무국장 염원시삼랑에게 면회 신청한다.
일본에서도「세기의 거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원병테마 영화『너와 나』는 그의 출현과 더불어 태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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