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 장관 망언에 유럽이 “발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EC 통합은 독의 유럽석권 술책/불은 서독만 졸졸 따르는 강아지”/발언 취소했지만 각국서 거센비난 일어
『EC(유럽공동체) 통합은 유럽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독일의 술책』이라는 니콜라스 리들리영국 상공장관의 말한마디로 유럽이 발칵 뒤집혀 있다.
리들리장관은 12일 발행된 영국의 주간지 스펙테이터와의 회견에서 EC가 추진하는 경제 및 통화동맹을 서독의 간교술책으로 규정하고 『EC에 주권을 넘겨주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에게 주권을 내주는 것과 다를게 없다』,『프랑스는 서독을 졸졸 쫓아가는 푸들강아지』라는 등 ECㆍ서독ㆍ프랑스를 거친 용어로 싸잡아 공격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에 서독이 가장 격분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서독 총리실의 스타벤하겐장관은 12일 즉각 성명을 발표,그의 발언은 모욕적인 것이라며 『그의 발언은 EC전체의 위신을 손상시켰다』고 격한 어조로 비난했다.
람스도르프 서독자민당 당수는 『그가 술에 취했거나 월드컵축구에서 서독에 패한 충격으로부터 아직 못벗어났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리들리장관에게 심한 조롱을 퍼부었고,유럽의회의 서독사회당그룹 대표인 디터 로갈로 의원은 『옛날같으면 벌써 군함이 항구를 떠나고도 남았을 일』이라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한 파문이 확대되자 현재 헝가리를 방문중에 있는 리들리장관은 『아무 조건없이 발언내용을 모두 취소한다』고 서둘러 물러섰지만 영국내 야당인 노동당은 물론이고 보수당내에서도 그에 대한 사임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닐 키노크노동당 당수는 『아직 그가 각료직에 남아 있는 것은 대처총리의 견해가 그의 견해와 같다는 얘기가 아니냐』며 그의 즉각적인 해임을 대처총리에게 강력히 요구했고,보수당 의원들도 EC내에서 영국의 입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의 사임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리들리장관을 상당히 신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처총리는 『그의 견해가 영국정부나 나의 견해를 대변한 것은 아니며 더구나 이미 그는 자신의 발언을 모두 취소하지 않았느냐』며 그를 옹호하고 있지만 그의 사임은 시간문제라는게 영국언론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통일과 함께 유럽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게 될 독일의 발목을 묶어두기 위해서는 강력한 EC통합이 필수적이라는게 일반적 인식이라는 점에 비추어 EC통합을 독일의 술책으로 규정한 리들리장관의 판단은 분명 잘못됐다는게 이번 파문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독일에 대한 유럽인들의 뿌리깊은 불신과 통일독일탄생에 대한 유럽인들의 불안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EC통합에 반대하는 한 영국 각료의 단순한 「헛소리」로만 보아넘길수는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듯 하다.<파리=배명복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