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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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학교를 중심으로 이웃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가슴속에 높게 드리워진 담장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성이 있다.
지난 7일 오후 8시 개원국교(서울 개포동)교정에서「제1회 개원 새 이웃의 밤」을 개최, 1백쌍이 넘는 동네 부부들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김화경씨(37·주부·개원지역 사회학교 운영위원 회장 개포 주공아파트 83동 101호)가 바로 그 주인공.
『이웃 부부끼리 서로 손을 잡고 목청껏「사랑해」를 부르자, 순간 코끝이 찡해 오더군요. 분위기 탓인지 초면인 이웃끼리도 금방 친해져 웃음을 주고받는가 하면,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살면서도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이번 모임을 통해 학교 선후배가 만나기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는『예정 시간 안에 도저히 끝낼 수 없어 프로그램을 예정보다 1시간이나 더 연장했는데도 헤어짐을 아쉬워 한사람들이 많아 오전 2∼3시까지 함께 어울렸던 부부들까지 있었다』면서 흐뭇해했다.
그가 이 프로그램을 구상한 것은 지난 3월. 개원지역 사회학교 임원들과 1년 사업 계획을 짜면서 7월 첫째 토요일이 마침 음력 보름날이라는데 착안, 달 밝은 여름밤에 부부 한마당을 펼쳐 보기로 했다.
『과연 부부 모임이 잘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더군요. 그래서 「아버지 교실」이라는 강좌 프로그램으로 바꾸려고 했더니 개원국교 유소저 교장(64)께서 부부 모임의 의미가 훨씬 크다며 격려해 주는 바람에 강행하기로 용기를 냈습니다.』
지난달 26일 개원 국교의 가정 통신을 이용,「자녀의 교정에서 이웃들과 정을 익히며 고운 추억을 만들어 보자」는 요지의 취지문과 함께 참가 신청서를 보내 29∼30일 접수를 받은 결과 89쌍이 신청해 왔다.
『18명 임원진들의 부부를 포함해 1백쌍만 되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접수기간 이후에도 뒤늦게 신청해온 이들이 있어 행사 날에는 순수 참가자만 1백쌍이 된데다 행사도중 동네에서 음악 소리를 듣고 달려온 부부도 6쌍이나 돼 그야말로 「성황」이었어요.』
그는『아버지들이 과연 엄마들과 함께 학교에 올까했던 것이 완전히 기우였다』며 웃는다.
『학교에 아버지들의 발을 한번만 들여보내게 하자』는 게 그의 숨겨진 의도. 평소 청소년 범죄는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 부족에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그는 특히 아버지가 아이들의 학교 생활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이 교육상 가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남자 이웃들간의 교류」는 그의 또 다른 의도. 『주부들끼리는 그래도 교류가 활발한 편이지요. 반상회도 있고 아이들이 오가고 하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익힐 기회도 많지요. 그런데 남자들은 직장과 사업에 매달려 지내다보면 자기 아내와 얘기할 틈도 별로 없거든요.』
평소 소원한 남자 이웃간의 사이를「이웃 사촌」으로 바꾸고 싶어「가벼운 술상 모임」을 여러 번 꾀한바 있는 그는 ▲서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점 ▲술을 마시지 않는 남자 이웃을 초대하기 힘든 점등이 있어 대안을 강구하게 됐다.
행사당일 아침 폭우가 쏟아져 레크리에이션 지도자에게 모임 연기를 통보했다가 시작 3시간전인 오후 5시까지 연락이 두절 돼 발을 동동 굴렀던 일이며, 경비가 넉넉지 못해 음식이 빈약했던 송구스러움도 이젠 그에게는 소중한 추억거리. 김씨는『가능하면 이런 모임을 자주 가져 이웃의 정을 도탑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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