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정가」 숨죽인 긴장/4인의 폭탄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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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위적 합당 반발한 충격 카드/야권통합 변수… 연쇄파동 예보
이철ㆍ김정길ㆍ노무현ㆍ이해찬의원이 13일 의원직 사퇴서를 전격 제출한데 이어 민주당이 전원사퇴를 결의함으로써 3당통합ㆍ민자당출범에 대한 야권의 극한적 대응방법으로 그동안 거론돼온 의원직 사퇴주장이 현실화됐다.
이들 네 의원은 사퇴에 즈음한 성명을 통해 『의원직을 사퇴함으로써 국군조직법과 방송관계법등 각종 악법을 불법무도하게 강행ㆍ통과시키고 있는 민자당 정권의 횡포에 온몸으로 항거하고자 한다』고 밝혔으나,『선거에 의해 짜여진 국회구도를 선거에 의하지 않고 변경시킨 것은 무효』 (노무현의원)라는 주장처럼 3당합당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자세를 사퇴서 제출이라는 충격적 방법으로 표출시킨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합당이후 평민ㆍ민주당에서 소속당내 일부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아가며 야권통합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왔고,이 과정에서 의원직 사퇴라는 마지막 카드를 대여는 물론 대야권용으로도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아 그 시점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여부를 심각히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국회법상 회기중에 의원이 제출한 사퇴서는 국회본회의의 의결로 처리하게 돼 있다. 박준규국회의장은 13일 오전 9시쯤 이들이 직접 제출한 사퇴서에 대해 『일단 본회의에 보고는 하겠지만 처리는 되도록 미루겠다. 이해찬의원의 경우 김대중총재와 의논해 보겠다』고 밝혔으나 이의원등은 『하루라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여권의 정략이 개입됐다는 의혹만 늘어날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사퇴번복의 여지가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같은 돌발사태에 대해 사퇴파동의 확산을 우려하는 민자ㆍ평민당은 우선 당황하고 있고,특히 평민당측은 소속 이해찬의원의 독자적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이 주류. 평민당은 막바지 임시국회가 극한으로 치달아 국민의 비판을 받았던 점을 의식,이것이 국민여론에 미칠 영향에 크게 신경쓰면서 의원직 사퇴가 다른 야권의원들에게까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소속의원 8명중 3명이 사퇴를 단행한 민주당이 이날 긴급의총을 열어 전원동조 사퇴키로 결정함으로써 일파만파의 충격파를 던질 가능성마저 생기게 됐다.
12일 밤 김정길의원으로부터 사퇴결정 사실을 「통보」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기택총재는 신중한 태도였으나 4명의 사퇴파동이 여야 모두를 강타하고 그 충격이 넓게 번질 것으로 보고 급기야 나머지 의원들도 같이 사퇴하기로 결정,일단 사퇴파동을 타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민자당이 13일 오전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과 평민당 김대중총재의 긴급회담을 제의한 것도 이러한 사퇴파동및 그 파급효과와 짙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자ㆍ평민 모두는 사퇴파문이 어느 방향으로 번질지에 대해 걱정이 큰 것 같다.
그러나 이들 4명은 사퇴에 즈음해 국회해산ㆍ조기총선 및 야권통합을 호소했을 뿐 구체적인 향후 일정이나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성명서에서 『범민주단일수권정당으로 통합하기를 평민ㆍ민주 양당과 재야민주세력에 대해 간곡히 호소한다』고는 밝혔으나 야권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국회의원 4인이 의원직을 벗어던지고 「야인」이 된 이상 이들의 향후 거취는 제도권내는 물론 재야세력들에도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민자ㆍ평민당은 사퇴파동을 우려하고 있어 이들이 합작해 사태축소 쪽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또 민주당이 사퇴파동을 극단적으로 이용할 경우 그 파문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평민당내에서도 이들의 사퇴에 일부 동조하는 의견이 일고 있고 이해찬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점상 국민요구에 맞지 않기 때문에 보류됐을 뿐이지,우리 당내에는 의원직 총사퇴가 꾸준히 거론돼 왔었다. 임시국회 종료에 즈음해 총사퇴가 다시 거론될 것이고 김총재도 오늘 아침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고 말해 사퇴서 제출이 확산될 여지는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정국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가능성까지 생겨 앞으로의 「연쇄반응」 여부가 주목된다.<노재현기자>
◎국회 법관련 조문과 사퇴일지
▲1백28조(사직)=①국회는 그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 다만 폐회중에는 의장이 이를 허가할 수 있다. ②의원이 사직하고자 할 때는 본인이 서명날인한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③사직의 허가여부는 토론을 하지 않고 표결한다.
◇6대국회때인 지난 65년 8월엔 민중당의 윤보선의원등 7명이 한일 국교정상화조약 비준반대의사를 밝히고 소속지구당에 탈당계를 제출해 당적이탈로 당시 헌법 38조에 의해 의원직을 자동 상실했었다.
◇10대국회에선 지난 79년 10월 신민당의 고재청의원등 69명이 김영삼총재의 의원직 제명에 항의,의원직 총사퇴서를 제출했으나 11월5일 국회 본회의 의결로 사퇴서가 반려됐었다.
◇13대국회에서 민주당의 노무현의원은 89년 3월20일 의회기능 무력에 대한 회의를 이유로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사무처에 접수시켰으나 14일만인 4월3일 사퇴의사 철회서를 제출,사퇴를 스스로 번복했었다.
김재순국회의장은 당시 사퇴서를 내고 잠적한 노의원 본인의 의사확인을 이유로 그동안 사퇴서 처리를 보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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