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 핵이 전쟁 막는다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2002년 일본 핵은 안 되고…
2002년 6월 5일 한상렬 통일연대 대표(왼쪽에서 셋째) 등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핵무기 보유가 가능하다는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의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북한 핵은 괜찮다?
16일 통일연대가 주최한 미대사관 앞 집회에서 한상렬 대표(왼쪽에서 셋째) 등이 북한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된 대북 결의안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주한 미국대사관 옆.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연대가 '비상시국농성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사로 나온 이승호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의장은 "유엔이 미국의 거수기 노릇을 하고 말았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은 한반도의 전쟁을 부르는 결정이다"며 만장일치로 통과된 유엔 결의안을 규탄했다. 결의안 통과 직후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한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는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어 장송희 한총련 의장은 "북한 외무성이 밝힌 대로 핵실험은 전쟁을 막기 위한 자위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핵실험은) 자위적 전쟁 억지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조치"라는 북한 외무성의 발표와 사실상 같았다.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성명서를 낭독하면서 "핵실험은 북.미 간 첨예한 격돌의 산물""제재는 곧 전쟁 선포"라고 했다. 핵실험 이후 북한 정권이 발표한 내용과 대동소이한 주장들이었다.

북한의 현 정권과 핵실험을 옹호하는 단체들이 북핵 사태와 관련해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북 핵실험은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한 자위적 행동"이라는 북한 측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국제사회의 합의로 마련된 유엔의 대북 결의안까지 비난하고 있다.

◆ 북한 주장 되풀이=소위 '통일운동'을 한다는 단체들이 북한 정권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한총련은 10일자 긴급성명을 통해 "북이 자위를 위한 핵무장의 길로 들어서게 떠민 것은 미국이다. 핵실험은 철저히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자위적 핵 억지력이다"라는 논리를 폈다. 이는 "(핵 개발이)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대응조치"라는 북한 외무성 성명과 일맥상통한다. 각종 반미 집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온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과 문정현 신부도 10일 집회에서 "미국의 대북 압살정책이 핵실험을 불러왔다"며 '미국 책임론'을 거론했다.

성신여대 김영호(국제정치학) 교수는 "전통적으로 좌파는 반핵 노선이지만 우리나라의 자칭 '진보단체'는 북한 핵실험의 정당성을 거드는 '무늬만 좌파'"라며 "북한 지도부와 북한 주민을 구분하지 않고 감상적 민족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 반미 여론 확산 노려=이들 단체는 북핵 사태를 반미 이슈와 연계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통일연대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광화문 KT 앞에 천막을 치고 "대북 제재 반대와 함께 한.미 FTA, 평택 미군기지 확장, 한.미 동맹 재편 저지를 통해 반전 평화의 여론을 불러오겠다"며 시국농성에 돌입했다. 북핵 문제를 기회로 반미 여론을 환기시키겠다는 것이다.

통일연대와 함께 민중연대.평택범대위는 22일 오후 광화문에서 '반미 반전 민중대회'를 열 계획이다. 통일연대.한총련.민중연대 등은 FTA 저지 범국본이나 평택 범대위 등에서 주축을 이루면서 적극적으로 반미활동을 벌여왔다.

한애란 기자

◆ 통일연대=6.15 공동선언 실현을 목적으로 한총련.범민련 남측본부 등 30여 개 단체가 연대해 2001년 3월 출범했다. 자주통일 실현과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주장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