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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문열 시대를 논하다] 2. 좌우 대립각 허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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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사회통합은 싸워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사고의 틀을 미래를 위해 전향적으로 수평이동할 때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황석영(左).이문열씨. 대화를 나누는 표정이 진지하다. 변선구 기자

한창 대담을 진행 중이던 지난 22일 늦은 밤, 경계인 송두율의 구속 수감 소식이 들려왔다. 황석영은 "두번이나 사과하고 반성문까지 제출한 상황에서 너무 짓밟혔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고, 이문열은 "우리의 이념 방어기제가 너무 가혹하게 작동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거푸 술잔을 비웠다. 얘기는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편가르기로 옮겨갔다.

사회:한국 문단에서 두 분을 보수와 진보의 대표주자로 여기는 것이 사실인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황석영:나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이 과연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일반 노조를 뛰어넘어 외국인 노동자의 입장에까지 설 수가 있느냐. 현재 대기업 노동자는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노동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또 보수라고 할 때 과거 군사독재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던 사람들이 보수인가? 이건 아니란 말이오. 우리가 볼 때는 보수는 김구 선생이 대표일 거요.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다시 새롭게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어요.

이문열:예전에 고민했던 일 중에 가장 난감했던 것이 보수란 규정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모든 걸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보수 속에 다 우겨넣었습니다. 말하자면 진보가 아닌 것은 모두 보수가 되어 현대사의 악역(惡役)들까지 다 그 속에 받아들여야 했지요. 나도 처음에는 기꺼이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듣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그 부분이 아주 고약한 부담이 되더군요. 마찬가지로 진보로 불리는 것들도 명확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어요.

황:진보의 한 획인 '극좌'는 북에 있고, 여기는 파시스트와 자유주의자들이 있어요. 이형이나 나는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해요. 자유주의자 중에 성질 급한 사람과 느긋한 사람이 있을 뿐이지. 개인의 자발성과 생존권이 내외의 요인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제한돼 있는 것이 북한 체제입니다. 그것을 보고 남한의 자유주의적 작가나 지식인들이 어떻게 용공좌파가 되겠소? 친북은 말이 되겠지만.

이:그것은 하나의 태도니까. 친북적이라고 하는 말과 예전에 누구를 빨갱이로 몰던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황:북한 사람들도 안을 수 있으면 안아야지. 툭하면 북에 가서 살아라 하는데 이런 선택과 통일을 말하는 사람들은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가 다양하게 변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해요. 각종 욕망과 생각과 자유가 멋대로 분출되는 마당에 보수냐 혁신이냐의 주제가 사실은 소모적인 틀이거든.

이:모든 사고 형태를 보수와 진보로 가르는 것 자체가 편의주의적 발상입니다. 구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바람에 여러 종류의 중간 목소리가 죽어버린 것이지요.

사회:그럼에도 근자에 우리 사회에 보수와 진보 논쟁이 한층 격해지는 게 사실 아닙니까?

이:보수.진보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의가 이렇게 뒤틀리게 된 것은 적(敵) 개념의 변화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적 개념이 확대되면 결국 나하고 똑같은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이 되는데…, 예를 들면 8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웬만하면 민중의 적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는데, 그 뒤 이념적으로 첨예해지면서 군사정권에 같이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바로 군사정권을 찬동하는 나쁜 놈이 돼버렸지요. 적 개념이 확대되면 피차 격앙되니까 실제 이상 과장돼 표현되기도 하고요.

황:내 기억에 이형 작품에서 그런 점을 보지 못했어. 젊은이들이 집 앞에서 책을 불태우고 했다는데 이것은 옳지 않아요. 가족사로 보더라도 시대의 아픔, 분단의 아픔을 담고 있는 이형의 작품이 많지요? 물론 이문열씨가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막 나가니까 자극을 받을 수는 있었겠지. 그러니까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작품에 전념하면 좋았을 걸.

이:80년대는 이념 지향적이었지요. 대의명분이 중요했고요. 지금은 오히려 탈이념적이 되면서 속된 정치화가 판을 치고 있어요.

황:나는 근년에 우리 사회가 너무 공론에 급급하고, 거기 집착하려는 목소리가 커지는 느낌을 받아요.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대중의 삶과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택시를 타면 운전사들이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이리 야단이냐고 물어. 보수고 개혁이고 다 귀찮다는 거야.

사회:그런 일이야 예전에도 있었고 특별히 새로운 현상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인터넷은 우리 경험에 새로운 광장인데 그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그 광장은 누구나 쉽게 드나들고 자기 의견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른바 쌍방향성의 함정이지요.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결정에는 나도 참여하고 동의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전문화되고 특정한 의도를 가진, 그리고 준비된 소수에 의해 조종 또는 조작당하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황:인터넷의 영향이 대단하지요. 긍정적으로는 탈권위에다가 아무나 저 하고 싶은 얘기를 막 하는 시대가 됐어요.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이라면 양쪽이 대체로 편가르기식의 이념적 성향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에요. 전문으로 그 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 욕설도 너무 많고.

이:그걸 보고 있으면 몹시 걱정스러울 때가 있어요. 예전에 히틀러의 나치스도 그랬고, 일본 군국주의자들도 그런 광장을 이용했어요. "지금 모두 조국을 위한 성전에 나가는데, 그래도 제 한 목숨 아까워 빠지고 싶은 비겁한 녀석은 빠져라." 그러는데 어떻게 빠지겠어요? 아무도 못 빠지지요. 그래서 지원병으로 남양군도에 끌려가 죽으면서도 자신은 자원출정했다고 믿는 게 그렇습니다. 인터넷이 그런 함정을 계속 악용할수록 사회는 점점 파시즘으로 치닫게 되지요. 거기다가 더 위험한 일은 이쪽 못지않게 저쪽 상대편도 그걸 악용한다는 점이지요.

사회:두 분 말고 다른 사람의 경우에도 보수와 진보는 문제가 안 되나요?

황:수평이동의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견해 차이는 분명히 있지요. 한쪽은 파시즘, 한쪽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이념은 이제 가능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형의 지적처럼 과거의 친일이나 군사독재를 보수로 칠 게 아니라, 미래의 전향적인 입장으로 사고의 수평이동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사회:정부와 사회 일각에 '편가르기'식 조중동 비판이 있는데요.

황:사회 현상으로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조중동 트라이앵글로 묶어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이:메이저 신문 고사작전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세 신문을 함께 묶을 수 있는 보편적인 태도라는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황:특정 신문을 지칭해 미안하지만 조선일보가 취했던 각종 편파적인 보도와 행동은 사회의 진행 속도나 진전 상태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티 조선'이라는 것이 나온 모양인데 나는 기본적으로 안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안티와는 거리를 두고, 안티를 젊은 세대가 빚어내는 사회현상 정도로 생각했으나 그 뒤 진행되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안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안티 조선의 주장에는 논리적인 당착이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부조리한 시대에 번성했으면서도 아직까지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게 죄가 된다면 말이 되지만, 그들 주장대로 과거의 보도 내용이나 편집 태도만을 문제삼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데가 많아요. 예를 들면 그들이 이를 가는 5공화국과의 관계만 하더라도 파렴치했던 나팔수 신문을 응징하자면 과거의 K.S신문부터 해야지요. 내가 특별히 조선을 편들 이유는 없지만, 그런 점으로만 보아도 안티 조선 운동이 그리 온당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황:그 신문들은 바뀌었잖아.

이:바로 보셨습니다. 바로 그 이유지요. 조선일보를 야단치면서 과거 행적을 끌어들이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쟤들은 바뀌어 이번에는 권력을 잡은 우리 편이 되었는데, 왜 조중동은 바뀌어 우리 편이 되지 않느냐고 몰매를 주는 거라면 말이 되지만.

황:내가 듣기로는 조선일보 내부에 젊은 기자들의 변화 요구가 상당하다고 해요. 조선이든 어디든 정치권력이 잘못됐을 때 과감하게 비판할 건 하고 사회 양쪽의 여론을 다 수렴하는 그런 신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이라크 파병 현안에 대해 어떤 의견이십니까?

황:작가로서 나는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 절대 반대야.

이:저는 절대 반대는 아니고 조건부 찬성입니다. 국익이나 명분이 확보되고,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만 있다면 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 조건은 정치적 산술의 문제인데 논란이 많겠지요. 하지만 둘째 조건은 전원 지원병으로만 파견한다면 어느 정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병 하나만 골라주십시오.

이:말 좀 조심해 했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일부 정치가만 그랬는데 이제 모두가 너무 함부로 쓰는 것 같아요.

황:슬로건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가 올해의 내 화두인데 나 스스로도 좀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정치적 슬로건의 홍수예요. 그건 껍데기인데.

이:함부로 쏟아내는 말의 홍수 속에 슬로건까지도 모두 휩쓸려 내려가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 도도한 막말의 탁류….

정리=신준봉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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