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개방 가속화 우려/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 전망(경제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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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유화 미 주장 거의 반영/국내 농업기반에 큰 타격/국내외 여건나빠 협상에 더욱 불리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이 우리나라에 극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농산물 수입개방이 가속화되고 쌀ㆍ보리 등에 대한 정부 수매가 어려워지는등 국내 농업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우려마저 있다.
그것도 멋 훗날의 얘기가 아니라 우루과이라운드가 연말에 종료되면 바로 내년부터 불어닥칠 문제다.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7일부터 13일까지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그룹 제23차 협상회의가 열린다.
이번 협상은 드주 농산물그룹 의장이 작성한 합의초안을 놓고 연말 종료를 목표로 각국이 막바지 절충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 합의초안은 농산물 무역자유화와 이를 가로막는 각종 장벽을 없애려는 미국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반영,외국산 농산물 수입을 가급적 막고 정부가 지원을 해서라도 농업기반을 다져나가려는 우리나라에 극히 불리하게 작성되어 있다.
물론 이 초안은 구속력이 없으며 협상도 이와는 다르게 결론지어지겠지만 각국 대표들이 이 초안을 근거로 협상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대세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
농산물협상은 그동안 ▲농산물생산을 늘리기 위해 각국이 지원하고 있는 국내 보조금의 삭감 내지 철폐 ▲농산물수입제한의 완화 ▲수출보조금의 감축등 세가지로 압축해 미국,EC(유럽공동체),케언즈그룹(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으로서 농산물을 수출하는 나라들),농산물수입국(한국ㆍ일본ㆍ스위스 등)으로 나뉘어 막후절충이 진행되어 왔다.
미국과 케언즈그룹은 국내 보조금 및 수출보조금을 없애고 수입제한도 풀어버리되 다만 각국의 농산물 가격차이와 경쟁력을 고려,제각기 실정에 맞게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입장인 반면 EC는 국내 보조정책의 경우 교통신호체계처럼 철폐대상(적색)ㆍ점진적 감축대상(황색)ㆍ허용대상(녹색)으로 구분,구체적 이행방법을 찾고 수입제한 철폐를 위한 관세화는 세계시장 가격과 환율변동이 막바로 국내가격변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무차별 적용은 안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또 한국ㆍ일본ㆍ스위스 등은 농업이 갖고 있는 식량안보측면 및 국토의 균형발전ㆍ환경보전문제등이 감안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의장 합의초안은 미국 및 케언즈그룹의 주장을 거의 전적으로 반영,국내보조정책의 경우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추곡수매를 통한 2중가격제도,배추ㆍ무ㆍ고추 등의 계약재배,보리수매때의 가격예시제,또는 내년부터 실시 예정인 농산물가격 상한제등을 모두 금지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쌀이 남아돌고 있는 판국에 높은 관세를 물고서라도 외국쌀이 수입될 가능성도 있다.
합의초안 내용이 밝혀지자 미국은 물론 만족을 표시했고 마침 칠레에서 회의중이던 케언즈그룹은 이 초안이 채택되지 않을 경우 농산물협상은 물론 전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선진국들은 주고 받는 협상기술이 능숙해 자칫 우리나라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미국은 EC가 주장하는 국내 보조금지급에 대한 교통신호 체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미국의 농산물 수입개방정책을 EC가 지지해 주는 협상이 성사 직전의 단계까지 진행중이며 일본도 수입제한 철폐에는 반대하지만 실상 수입제한을 하고 있는 농산물은 쌀등 10개 품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입제한 품목은 현재 4백10개로 많은 것을 다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은 얻는다」는 전략으로 수입개방에 본격 착수할 경우 농민들의 빗발치는 불만을 야기시킬게 확실하다.
이같은 국내외의 경직된 여건이 우리나라 통상대표자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어 결국 농산물 시장개방이라는 국제 조류에 조난당할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한종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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